느끼는 몸의 연대


한국 사회에서 체력이 좋다는 것은 잘 버틴다는 말이다. 

느낌 그 자체 혹은 느낌의 표현을 억누르고 부정하는 건 가장 미묘하고 무서운 방식의 억압과 폭력의 방식이다.


보이는 몸과 기능하는 몸 이전부터 형성된 더 근원적이고 동물적인 몸이 있다. 바로 느끼는 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뭐가 위험한지 이로운지 즐거운지 고통스러운지 알려주는 몸이다.


00:59

다른 몸의 감각들로 공간과 접촉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비언어적인 소통으로 한번 공간을 같이 탐색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탐색하는 사람이 원하는 속도로 아니면 나한테 무게를 줄 수 있는 편안한 속도로 계속해서 같이 동행하는 사람에게 

무게를 내어주면서 지지받는 느낌을 허락하실 수 있으면 좋겠고요


01:35

태어나서 양수에서 나와서 중력을 처음 느낄 때는 정말 속수무책으로 이렇게 바닥에서 허우적대다가 

두 발로 딛고 중력과 관계 맺는 연습을 저희가 하기 시작합니다. 별 생각 없이 별 느낌 없이 걷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균형이 무너질 때 좀 많이 흔들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부분도 잡지 않고 흔들거리는 걸 그대로 허용하면서 필요하다면 서로가 연결된 상태에서 

더 역동적으로 균형을 한번 탐색할 수 있는지 하나의 아레나를 우리가 크게 만들고 거기 안에서 한 번 균형을 잡는 시간을 좀 가져보도록 하거든요.

내 발의 감각부터 날아오는 공 그리고 공을 잡는 손까지 다 연결되어서 계속 힘을 쓰면서 또 받고 어떻게 하면 나를 소진시키지 않으면서 

이 사람도 소진시키지 않으면서 각각의 관절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압력을 분산시키는지 아주 천천히 

이 사람이 자기 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시고 나도 내 몸의 어떤 움직임이나 상태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시면서 몸을 이제 계속 새롭게 짜는 거죠.


05:18

나를 파괴하고 소진시키는 혼동 말고 나의 어떤 관성이나 구조를 으깨주는 식의 혼돈. 

피구의 어떤 성격이나 요소가 사람들을 양분화 시킬까 이런 걸 좀 고민해 봤어요. 

이 공에 꼬리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더 늘릴 수 있는 설계고요

죽은 사람이 끝나는 게 아니라 끈과 막대기를 들고 소신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산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있어요. 

공의 재질부터 어떠한 역할의 추가나 변형까지 판도를 뒤집는 규칙들을 넣었을 때 어떻게 판이 바뀌는지 한번


06:44

몸을 펼치고 들리고 돌리고 휘두르는 것이 얼마만인지 평소에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이 이렇게 점프하는 순간을 즐거워했다. 새삼 느꼈다.


06:56

처음 공을 던지며 서로 이름을 부를 때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일지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몰랐는데 

정적인 방식에서 동적인 방식으로 호흡을 맞추고 중심에 기대어 주고 무너지듯 터지는 웃음 속에서 

그 사람을 다 아는 것만 같은 느낌. 이미 내 삶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이런 만남과 공동체를 계속 만나고 싶다. 몸을 허가한다!


07:28

타인의 시선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 즐거움 방어 기제를 내려놓은 기분 좋은 안정감을 이렇게 삶을 따스하게 감싸 안고 

품어주는 느낌들을 몸으로 나눌 수 있는 동료 이웃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환갑 때도 해볼까 봐. 

좋아요.
노년을 위한 시작이


08:06

몸은 요즘 나를 싣고 다닌다 일터에서 집으로 약속 장소로 나는 차가 고장 나지 않도록 정비하듯 몸을 관리했다. 

고장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켜고 달리고 부르고 소리 지르고 당기고 매달리고 웃고 싶었다. 그건 다 몸이 하는 일이었다. 

오늘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한국 사회에서 체력이 좋다는 것은 잘 버틴다는 말이다. 

느낌 그 자체 혹은 느낌의 표현을 억누르고 부정하는 건 가장 미묘하고 무서운 방식의 억압과 폭력의 방식이다.

보이는 몸과 기능하는 몸 이전부터 형성된 더 근원적이고 동물적인 몸이 있다. 바로 느끼는 몸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뭐가 위험한지 이로운지 즐거운지 고통스러운지 알려주는 몸이다.

다른 몸의 감각들로 공간과 접촉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비언어적인 소통으로 한번 공간을 같이 탐색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탐색하는 사람이 원하는 속도로 아니면 나한테 무게를 줄 수 있는 편안한 속도로 계속해서 같이 동행하는 사람에게 

무게를 내어주면서 지지받는 느낌을 허락하실 수 있으면 좋겠고요.

태어나서 양수에서 나와서 중력을 처음 느낄 때는 정말 속수무책으로 이렇게 바닥에서 허우적대다가 

두 발로 딛고 중력과 관계 맺는 연습을 저희가 하기 시작합니다. 별 생각 없이 별 느낌 없이 걷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 균형이 무너질 때 좀 많이 흔들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부분도 잡지 않고 흔들거리는 걸 그대로 허용하면서 필요하다면 서로가 연결된 상태에서 

더 역동적으로 균형을 한번 탐색할 수 있는지 하나의 아레나를 우리가 크게 만들고 거기 안에서 한 번 균형을 잡는 시간을 좀 가져보도록 하거든요.

내 발의 감각부터 날아오는 공 그리고 공을 잡는 손까지 다 연결되어서 계속 힘을 쓰면서 또 받고 어떻게 하면 나를 소진시키지 않으면서 

이 사람도 소진시키지 않으면서 각각의 관절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압력을 분산시키는지 아주 천천히 

이 사람이 자기 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시고 나도 내 몸의 어떤 움직임이나 상태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주시면서 몸을 이제 계속 새롭게 짜는 거죠.

나를 파괴하고 소진시키는 혼동 말고 나의 어떤 관성이나 구조를 으깨주는 식의 혼돈. 

피구의 어떤 성격이나 요소가 사람들을 양분화 시킬까 이런 걸 좀 고민해 봤어요. 

이 공에 꼬리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더 늘릴 수 있는 설계고요

죽은 사람이 끝나는 게 아니라 끈과 막대기를 들고 소신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산 사람을 보호해 줄 수 있어요. 

공의 재질부터 어떠한 역할의 추가나 변형까지 판도를 뒤집는 규칙들을 넣었을 때 어떻게 판이 바뀌는지 한번

몸을 펼치고 들리고 돌리고 휘두르는 것이 얼마만인지 평소에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이 이렇게 점프하는 순간을 즐거워했다. 새삼 느꼈다.

처음 공을 던지며 서로 이름을 부를 때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일지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몰랐는데 

정적인 방식에서 동적인 방식으로 호흡을 맞추고 중심에 기대어 주고 무너지듯 터지는 웃음 속에서 그 사람을 다 아는 것만 같은 느낌. 

이미 내 삶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 이런 만남과 공동체를 계속 만나고 싶다. 몸을 허가한다!

타인의 시선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 즐거움 방어 기제를 내려놓은 기분 좋은 안정감을 이렇게 삶을 따스하게 감싸 안고 

품어주는 느낌들을 몸으로 나눌 수 있는 동료 이웃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환갑 때도 해볼까 봐. 

좋아요.
노년을 위한 시작이

몸은 요즘 나를 싣고 다닌다 일터에서 집으로 약속 장소로 나는 차가 고장 나지 않도록 정비하듯 몸을 관리했다. 

고장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켜고 달리고 부르고 소리 지르고 당기고 매달리고 웃고 싶었다. 그건 다 몸이 하는 일이었다. 

오늘 그런 일이 일어났다.

영상을 보고 나서 떠오른 이야기를 편히 나누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