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놀이 고전 읽기] Daniel Stern, The Interpersonal World of the Infant (1985) : 말 없이 서로에게 맞춰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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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스턴의 '정서적 조율(affect attunement)'이 알려주는 것


아홉 달쯤 된 아기가 손에 쥔 장난감을 흔듭니다. 신이 나서 팔을 위아래로 크게, 점점 빠르게 흔듭니다. 곁에 있던 엄마가 그 모습을 보다가 소리를 냅니다. "우와아아아!" 아기의 팔이 올라갈 때 소리가 커지고, 아기의 리듬이 빨라질 때 목소리도 함께 빨라집니다.

엄마는 아기를 따라 팔을 흔들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낸 소리를 흉내 낸 것도 아닙니다. 엄마가 맞춘 것은 행동이 아니라, 그 행동 안에 담긴 느낌의 모양(form of vitality)이었습니다. 커지는 강도, 빨라지는 속도, 터져 나오는 기쁨. 아기는 자기가 느끼는 것을 엄마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미국의 발달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였던 ‘대니얼 스턴(Daniel Stern)’은 이 짧은 순간을 포착해 깊이있게 탐구했습니다. 그리고 1985년에 낸 책 『아기의 대인관계적 세계(The Interpersonal World of the Infant)』에서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정서적 조율(affect attunement)’이라고 말입니다.


모방과 조율은 다릅니다


아기가 손을 흔들 때 엄마도 손을 흔든다면, 그건 모방입니다. 곧,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조율은 다릅니다. 스턴이 관찰한 어머니들은 아기의 행동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습니다. 아기가 몸을 움직이면 어머니는 소리로 답했고, 아기가 소리를 내면 어머니는 몸짓으로 답했습니다. 표현되는 통로는 완전히 다른데, 그 안의 무언가가 통했습니다.

스턴은 이 통함이 아기의 속마음의 상태(inner state)라고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맞추는 것은 아기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아기가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가입니다. 그래서 조율은 부분적이고, 선택적이고, 대개 어머니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일어납니다.

이 차이는 아기에게도 분명히 전해집니다. 어머니가 단순히 따라 하기만 할 때보다, 이렇게 조율해줄 때 아기는 어머니를 더 오래 바라보고 더 많이 웃습니다. 모방은 "네가 한 것을 봤어"라고 말합니다. 조율은 "네가 느끼는 것을 나도 느껴"라고 말합니다.


무엇이 맞춰지는가 — 생기 정서

그렇다면 서로 다른 통로를 넘어서 맞춰지는(cross-modal matching) 건 과연 무엇일까요.

스턴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의 이름들 — 기쁨, 슬픔, 분노 — 만으로는 사람 사이에 오가는 것을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감정의 종류가 아니라 감정이 흘러가는 형태였습니다. 솟구치고(surging), 사그라들고(fading), 스쳐가고(fleeting), 터져 나오고(exploding), 감싸고(cushining), 빨라지는 것(accelerating). 그는 이것을 ‘생기 정서(vitality affects)’라 불렀습니다.

같은 '기쁨'이라도 폭죽처럼 터지는 기쁨과 천천히 차오르는 기쁨은 다릅니다. 같은 '안아 올림'이라도 급하게 낚아채는 손길과 부드럽게 감싸는 손길은 아기에게 전혀 다른 경험입니다. 스턴은 인간이 서로에게서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읽어내는 것이 바로 이 흐름의 모양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 모양은 어떤 감각 통로로도 옮겨질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본 움직임의 리듬이 귀로 듣는 목소리의 리듬으로 번역됩니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이 번역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턴은 이것을 ‘초양식 지각(amodal perception)’이라 불렀습니다. 조율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다른 언어로 말하면서도 동시에 같은 것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음을 배우는 일


조율은 대략 생후 아홉 달 무렵부터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스턴은 이 시기를 아기가 중요한 것을 깨닫는 때로 보았습니다. 내 안에 마음이 있듯 저 사람 안에도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이 내 마음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조율은 그 만남이 일어나는 첫 번째 방식입니다. 아기는 말을 배우기 훨씬 전에, 자기 안의 느낌이 다른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반복되면서 아기 안에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감각이 자라납니다.

반대로 어떤 느낌들은 조율받지 못한 채 남습니다. 아기가 기뻐할 때마다 어머니가 반응하지 않거나, 어떤 종류의 흥분에는 늘 어머니의 얼굴이 굳는다면, 아기는 그 느낌을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으로 배웁니다. 조율은 아기의 어떤 부분이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것이고 어떤 부분이 혼자 간직해야 하는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알려줍니다. 스턴이 보기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는, 우리의 어떤 느낌들이 조율받았는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놀이에서 일어나는 일


이 개념을 알고 나면 아이와 함께 놀 때 어떤 것에 반응하고 있는지가 보입니다.

아이가 블록으로 탑을 쌓다가 마지막 블록을 올리고 환호할 때, 어른이 "잘했어"라고 말하는 것과 아이의 환호에 맞춰 몸을 함께 춤을추며 웃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전자는 평가이고, 후자는 조율입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해냈다고 인정해주는 것과, 아이가 지금 느끼는 그 솟구치는 기쁨을 나도 함께 느끼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은 다릅니다.

몸으로 노는 놀이가 특별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놀이 안에서 두 사람은 끊임없이 서로의 강도와 속도와 리듬을 읽습니다. 술래잡기의 속도, 레슬링의 힘 조절, 그네를 미는 손의 세기. 이 모든 것은 상대의 생기 정서를 읽지 못하면 조절할 수 없습니다. 너무 세면 놀이가 위협이 되고, 너무 약하면 놀이가 시시해집니다. 잘 노는 아이들은 따로 말을 하지 않고도 이 조절을 해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몸으로 뒤엉켜 노는 시간은, 상대의 느낌의 모양을 읽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 연습은 어떤 수업으로도 대체될 수 없습니다. 서로를 읽어야만 놀이가 굴러가기 때문입니다.


어른의 조율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우리는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이 어떤 속도였는지, 어떤 온도의 말투였는지까지 기억합니다. 힘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상대가 정확한 조언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목소리가 낮아지고 몸이 조금 기울어졌기 때문에 위로받았던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조율을 경험한 것입니다.

반대로 상대가 옳은 말을 했는데도 마음이 닫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말의 내용은 맞았지만 흐름의 모양이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생 이 모양을 읽으며 삽니다.


조율을 읽는 감각


스턴이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는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장 먼저 오가는 것은 말이 아니라 감정이 흐르는 모양이고, 그것을 읽는 감각은 우리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감각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상대의 눈빛과 어깨와 호흡과 속도를 읽을 기회가 줄어들수록, 우리는 조율에 서툴러집니다. 화면 너머로 오가는 문장에는 강도도, 속도도, 솟구침도 담기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아기 시절부터 읽어온 그 모양이 거기에는 빠져있습니다.

아이가 다른 사람과 몸으로 부딪히며 놀 시간을 지켜주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시간 안에서 아이는 상대의 느낌의 모양을 읽는 법을 익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앞으로 만날 모든 사람과 관계 맺기 위해, 가장 소중히 쓰게 될 능력입니다.


이 글은 Daniel Stern의 『The Interpersonal World of the Infant』(1985)에서 제시된 정서적 조율(affect attunement)과 생기 정서(vitality affects) 개념을 일반 독자를 위해 쉽게 풀어 쓴 것입니다. 관련 개념은 그의 후기 저작에서도 계속 발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