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놀지 않게 되었을까요
거리를 걸어가는데 길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거대한 미끄럼틀과 짚라인을 보니 나도 한번 타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 동네 여기저기를 누비며 뛰어놀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이야기합니다. “다 큰 어른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애들 노는 데 잖아.”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발걸음을 돌립니다.
누구나 이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몸은 놀고 싶어 하는데, 내면에서 저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놀이 디자이너로 활동중인 카스 홀맨(Cas Holman)은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저서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평생에 걸쳐 아이들의 놀잇감을 만들어온 그가 2025년에 낸 책 『놀이하는 삶(Playful)』에서는 아이들의 놀이를 넘어 어른들의 놀이를 이야기 합니다.

놀지 않도록 배워온 어른들
홀맨은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어떻게 노는지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이상 ‘놀지 않도록 배웠다’고 말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수업에 집중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은 곧 '덜 놀게 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곧 '해야하는 일을 해치우는 것
(getting things done)’으로 채워지는 겁니다. 놀이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졸업하게 되는 유치하고 쓸데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립니다.
홀맨은 이 상실을 그저 삶이 조금 덜 재밌어진 것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놀이하는 나'와 멀어지는 것은 정서적 건강부터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까지, 삶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따라서 놀이를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라져 마땅한 것이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이 창의성과 연결과 회복을 지탱하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자유놀이(free play)
홀맨이 말하는 놀이는 남는 시간에 하는 여가나 오락, 휴식과는 다릅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놀이는 ‘자유 놀이(free play)’라 합니다. 이 때 자유 놀이는 ‘뚜렷한 목표나 보상 없이, 순전히 내가하고 싶기 때문에 몰입하게 되는 활동’입니다. 점수와 승패와 보상 등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 즉 무언가를 게임처럼 만드는 것(gamification)은 자유 놀이가 아닙니다. 자유 놀이는 외부 보상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될 수도, 목적지 없는 산책이 될 수도, 샤워를 하면서 추는 춤, 집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일. 모든 것이 자유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의 놀이는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음 속 두 개의 목소리
홀맨은 우리 안에 두 개의 목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번째는 ‘놀이 목소리(Play Voice)’입니다. 여전히 세상 안에서 놀이의 가능성을 보고 "저거 해보자, 저 노래에 맞춰 춤춰보자”고 부추기는 내면의 소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른 목소리(Adult Voice)’입니다. 생산성과 효율과 체면을 앞세우며 "남들 보는데 창피해, 할일도 많은데 다 큰 어른이 그러면 안되는 거야.”라고 제지하는 소리입니다.
문제는 어른 목소리가 놀이 목소리를 자주 이긴다는 데 있습니다. 놀이터 근처를 걷다 멈칫한 순간, 우리를 포기하게 한 것이 바로 어른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홀맨이 보기에 놀이 목소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커가면서 그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지 않도록 학습되었을 뿐입니다.
그가 얘기하는 해결책은 단순합니다. 놀이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 목소리가 힘을 얻어 더 많은 놀이의 방법을 스스로 제안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듣기 시작하면 점점 더 잘 들리는, 일종의 선순환이 시작되는 겁니다.
놀이하는 마음을 되찾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그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될까요. 홀맨은 놀이를 회복하는 삶을 위해 세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첫째, ‘가능성 열어두기(embracing possibility)’입니다. 정해진 하나의 답을 찾기 전, 열려 있는 다른 선택지도 살펴봅니다.
둘째, ‘판단 내려놓기(releasing judgment)’입니다. "잘해야 한다, 바보같아 보이면 안 된다"는 내면의 검열을 내려놓습니다.
셋째, ‘성공 재정의하기(reframing success)’입니다. 결과와 효율이 아니라, 과정과 탐색 그 자체를 성취로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의 역설이 깔려 있습니다.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은 오히려 창의성을 떨어뜨립니다. 잘 보이려 애쓸수록 더 굳어버립니다. 그래서 판단을 내려놓은 놀이의 상태가, 오히려 가장 깊은 창의성과 몰입을 끌어냅니다.
어른의 놀이에 주목하다
이 책은 놀이를 이야기해 온 여러 사람들 다음 자리에 서 있습니다. 홀맨은 놀이의 다면성을 구조화한 브라이언 서튼스미스, '잠재적 공간'을 말한 위니콧, 정서를 신경과학으로 파고든 야크 판크세프 같은 이들을 주장의 근거로 삼습니다. 놀이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 — 놀이는 우리가 자기 자신이 되고 삶의 모든 단계에서 계속해서 피어나는 방식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다만 다른 놀이 이야기들과 다른 지점이 있습니다. 아이가 아니라 어른에 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이의 놀 권리를 말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다 자란 우리 자신이 놀이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드뭅니다. 홀맨은 그 드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어두운 면을 짚어냅니다. '해야 할 일을 해치우는 것'에 지배당한 삶, 효율과 생산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 세계에서, 놀이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 목소리가 이기기 훨씬 수월해진 시대인 것입니다.
방법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이 책은 "이렇게 하면 된다”는 지침서는 아닙니다. 그러나 홀맨이 주려는 것은 처음부터 방법이 아니라 관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하라고 알려주는 대신, 어떻게 세상을, 사람을 볼 것인가를 다시 묻는 책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놀이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방법을 배워서 되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저지하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그 옆의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 말입니다.
이 글은 카스 홀맨(Cas Holman)이 리디아 덴워스와 함께 쓴 『Playful: How Play Shifts Our Thinking, Inspires Connection, and Sparks Creativity』(2025)의 핵심 논지를 일반 독자를 위해 정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놀지 않게 되었을까요
거리를 걸어가는데 길가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거대한 미끄럼틀과 짚라인을 보니 나도 한번 타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릴 때 동네 여기저기를 누비며 뛰어놀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이야기합니다. “다 큰 어른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애들 노는 데 잖아.”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발걸음을 돌립니다.
누구나 이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몸은 놀고 싶어 하는데, 내면에서 저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놀이 디자이너로 활동중인 카스 홀맨(Cas Holman)은 이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그의 저서에서 풀어내고 있습니다. 평생에 걸쳐 아이들의 놀잇감을 만들어온 그가 2025년에 낸 책 『놀이하는 삶(Playful)』에서는 아이들의 놀이를 넘어 어른들의 놀이를 이야기 합니다.
놀지 않도록 배워온 어른들
홀맨은 우리가 어른이 되면서 어떻게 노는지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이상 ‘놀지 않도록 배웠다’고 말합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수업에 집중하라고 가르칩니다.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것'은 곧 '덜 놀게 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곧 '해야하는 일을 해치우는 것
(getting things done)’으로 채워지는 겁니다. 놀이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졸업하게 되는 유치하고 쓸데없는 무언가가 되어버립니다.
홀맨은 이 상실을 그저 삶이 조금 덜 재밌어진 것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놀이하는 나'와 멀어지는 것은 정서적 건강부터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성까지, 삶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따라서 놀이를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라져 마땅한 것이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이 창의성과 연결과 회복을 지탱하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주장을 펼칩니다.
자유놀이(free play)
홀맨이 말하는 놀이는 남는 시간에 하는 여가나 오락, 휴식과는 다릅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놀이는 ‘자유 놀이(free play)’라 합니다. 이 때 자유 놀이는 ‘뚜렷한 목표나 보상 없이, 순전히 내가하고 싶기 때문에 몰입하게 되는 활동’입니다. 점수와 승패와 보상 등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것, 즉 무언가를 게임처럼 만드는 것(gamification)은 자유 놀이가 아닙니다. 자유 놀이는 외부 보상 때문이 아니라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낯선 사람과 나누는 대화가 될 수도, 목적지 없는 산책이 될 수도, 샤워를 하면서 추는 춤, 집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일. 모든 것이 자유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른의 놀이는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음 속 두 개의 목소리
홀맨은 우리 안에 두 개의 목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첫번째는 ‘놀이 목소리(Play Voice)’입니다. 여전히 세상 안에서 놀이의 가능성을 보고 "저거 해보자, 저 노래에 맞춰 춤춰보자”고 부추기는 내면의 소리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른 목소리(Adult Voice)’입니다. 생산성과 효율과 체면을 앞세우며 "남들 보는데 창피해, 할일도 많은데 다 큰 어른이 그러면 안되는 거야.”라고 제지하는 소리입니다.
문제는 어른 목소리가 놀이 목소리를 자주 이긴다는 데 있습니다. 놀이터 근처를 걷다 멈칫한 순간, 우리를 포기하게 한 것이 바로 어른 목소리입니다. 그런데 홀맨이 보기에 놀이 목소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커가면서 그 목소리를 진지하게 듣지 않도록 학습되었을 뿐입니다.
그가 얘기하는 해결책은 단순합니다. 놀이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 목소리가 힘을 얻어 더 많은 놀이의 방법을 스스로 제안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한 번 듣기 시작하면 점점 더 잘 들리는, 일종의 선순환이 시작되는 겁니다.
놀이하는 마음을 되찾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그 목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될까요. 홀맨은 놀이를 회복하는 삶을 위해 세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첫째, ‘가능성 열어두기(embracing possibility)’입니다. 정해진 하나의 답을 찾기 전, 열려 있는 다른 선택지도 살펴봅니다.
둘째, ‘판단 내려놓기(releasing judgment)’입니다. "잘해야 한다, 바보같아 보이면 안 된다"는 내면의 검열을 내려놓습니다.
셋째, ‘성공 재정의하기(reframing success)’입니다. 결과와 효율이 아니라, 과정과 탐색 그 자체를 성취로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의 역설이 깔려 있습니다.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압박은 오히려 창의성을 떨어뜨립니다. 잘 보이려 애쓸수록 더 굳어버립니다. 그래서 판단을 내려놓은 놀이의 상태가, 오히려 가장 깊은 창의성과 몰입을 끌어냅니다.
어른의 놀이에 주목하다
이 책은 놀이를 이야기해 온 여러 사람들 다음 자리에 서 있습니다. 홀맨은 놀이의 다면성을 구조화한 브라이언 서튼스미스, '잠재적 공간'을 말한 위니콧, 정서를 신경과학으로 파고든 야크 판크세프 같은 이들을 주장의 근거로 삼습니다. 놀이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 — 놀이는 우리가 자기 자신이 되고 삶의 모든 단계에서 계속해서 피어나는 방식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합니다.
다만 다른 놀이 이야기들과 다른 지점이 있습니다. 아이가 아니라 어른에 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이의 놀 권리를 말하는 목소리는 많지만, 다 자란 우리 자신이 놀이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드뭅니다. 홀맨은 그 드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우리 시대의 어두운 면을 짚어냅니다. '해야 할 일을 해치우는 것'에 지배당한 삶, 효율과 생산성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된 세계에서, 놀이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 목소리가 이기기 훨씬 수월해진 시대인 것입니다.
방법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이 책은 "이렇게 하면 된다”는 지침서는 아닙니다. 그러나 홀맨이 주려는 것은 처음부터 방법이 아니라 관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을 하라고 알려주는 대신, 어떻게 세상을, 사람을 볼 것인가를 다시 묻는 책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놀이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방법을 배워서 되찾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저지하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그 옆의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 말입니다.
이 글은 카스 홀맨(Cas Holman)이 리디아 덴워스와 함께 쓴 『Playful: How Play Shifts Our Thinking, Inspires Connection, and Sparks Creativity』(2025)의 핵심 논지를 일반 독자를 위해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