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벨 훅스, <경계넘기를 가르치기>


해방 교육에서 실질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교사가 교실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몸을 가지고 몸의 영역에서 몸을 상대하여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탁을 떠나 교실을 돌아다닐 때 교사의 움직임이 학생들에게 매우 분명해진다는 것을 갑자기 느끼게 됩니다. 또한 면대면 관계의 가능성이 생기고, ‘자신이 말한 것’과 ‘상대방이 말한 것’을 존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물리적으로 가까워지자 내가 해야하는 말은 보이지 않는 선, 즉 경계의 벽 너머 교탁뒤에서 했던 말과는 갑작스럽게 달라집니다. 교탁 뒤에서 하는 모든 말은 고귀하고 진실하고, 교탁 맞은 편의 학생들의 모든 말은 단순히 내 관심을 얻기 위한 것이며, 내가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잘했어.”, “좋아.”라는 말밖에 없습니다. 


교실에서 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즉 몸을 삭제시키면 학생들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실, 즉 정보를 분배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교사는 교사의 몸에서 나오지 않은 정보를 가르치라고 요구받습니다. 그러나 교실의 편견을 비판하려는 우리는 몸으로 돌아가 우리 자신을 역사의 주체로서 이야기해야합니다.


그러나 참여 교육을 재개념화하면서, 나는 좋은 느낌을 얻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님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아마 우리는 일부 수업에서는 즐거워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대개 드물겁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지적인 발달의 한 단계로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합니다. 편안하고 좋은 느낌만을 추구한다면, 학생들은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나 책, 토론 등과 같은 어려운 학습 도구와 씨름 하는 과정에서 깨닫는 고결함을 느낄 기회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즐거움은 때때로 ‘어려운 일과 함께’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난 학기에 나는 한 수업을 마치고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수업은 ‘굉장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나와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나는 나 자신을 재생산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참여한다는 느낌과 지적인 행위에 흥미를 가지고서 비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진 채로 학기를 마쳤습니다.


우리는 수업이 구경거리로 변하는 것을 막아야합니다. 교수가 ‘스타‘가 되고 유명인이 되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명인이 되면 불편한 점은 사람들이 수업에 참여하기보다는 구경꾼이 된다는 점입니다. 벨 훅스를 스타로 여기고 그 모습을 보려고 수업에 오는 학생은 나를 기쁘게 하려고 자기 검열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학생들은 나와 맞대항하려고 수업에 오기도 합니다. 이상적으로야 ‘열광적 신자’가 되려는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면 개혁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교실은 스타를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교실은 학습을 위한 장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