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내 몸의 한계 도전하는 파쿠르로 ‘탈코르셋’ 말하는 여성들

난생 처음 해보는 동작으로 ‘사회가 용인하는 여성상’ 깨는 파쿠르 어려서부터 들어온 “여자는 이런 운동 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들… “특정한 몸, 특정한 동작만 ‘정상’으로 보는 사회규범 깨고 싶다”

“‘탈코르셋’이라고 하면 단순히 화장, 머리 길이, 옷차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난생처음 해보는 새로운 운동을 하면서 20년, 30년 넘게 내 몸이 받아온 억압이 어떤 건지 직접 느끼게 됐어요.”


‘사회가 요구해온 여성상, 투명한 현대판 코르셋을 벗자’는 ‘탈코르셋’ 운동은 꾸밈노동 거부로 대표된다. 꾸밈이 여성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이나 ‘활동’의 영역이 아닌, ‘필수 요건’인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꾸미지 않는 여성은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고, 마치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처럼 질타받으면서 농담의 소재까지 되는 현실을 뒤집자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충족하기 위해 해야 할 ‘관리’의 영역에는 외모를 꾸미는 것에 더해, ‘행동’도 있다. 남성과 여성 각각에 주어진 고정 관념 속에 ‘좀 크게 움직이는’ 여성들은 “남자 같다”는 말을 듣곤 한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이하 ‘센터’)가 연 ‘여성을 위한 파쿠르 모임’, <월담> 두 번째 시즌에 참가한 이들은 이런 말들에 질릴 대로 질린 성인 여성들이었다.


머리 자르기, 화장 지우기 말고도 ‘탈코르셋’을 말하다

“땅바닥에 옷 신경 쓰지 않고 드러누워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모여서 가볍게 운동이나 해보자”고 계획했던 파쿠르 모임은 그런 이들과 만나 ‘해방’의 장이 됐다. 9월의 마지막 금요일, 파쿠르를 배우려 모인 이들은 ‘네 발’로 기고 돌담을 오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신하고’ ‘튀지 않게’ 행동하려 해왔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체감했다.


“파쿠르는 있는 길을 가는 게 아니라 없는 길을 새로 내는 활동”

어원은 프랑스어 parcours로, 파쿠르를 가르치는 강사 리조는 ‘길을 내는 활동’, ‘길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파쿠르는 주변 환경에 있는 지형물을 활용해서 움직임을 만드는 활동이에요. 기어가기, 매달리기, 도약하기 같은 인간 본연이 가진 움직이는 능력을 끄집어내서 극대화하는 훈련이기도 하고요. 장애물을 넘을 때 매달려서 넘을 건지, 매달릴 때는 벽을 한번 찰 건지, 기어오를 때는 한손을 쓸 건지, 점프는 어떻게 할 건지 다양한 방식을 써보는 거죠.”

“다른 운동과 다른 점 중에 하나는, 함께 운동하지만 각자 가진 목표를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착지하는 게 목표일 수도 있고, 빨리 도달하는 게 목표일 수도 있고, 가는 동안 예술적인 기술을 활용해서 최대한 자기표현을 하는 게 목표일 수도 있어요. 그 모든 목표를 다 존중하는 게 기본이에요.”


“여자는 이런 운동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

“고등학교 때 운동장에 나가면 남자애들이 절 안 끼워주더라고요. 누나라서, 여자라서 안 된다고. 그런 게 반복되다 보니까 운동은 함부로(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게 되더라고요.”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운동, ‘여자들은 거의 안 하는 운동’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들은 생소한 파쿠르를 선택했을까? 모임을 기획한 센터 김예은 매니저는 ‘막상 찾으려니 새로운 운동이란 게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기존의 운동들은 다 규칙이 확실한데, 파쿠르는 운동할 때 내 행동을 평가하지 않고, 내 능력만큼만 하면 되는 운동이었어요. ‘이건 틀린 동작’이라는 게 없더라고요.”

파쿠르 모임에 오기 전까지 “운동 좀 해봤다”는 참가자들의 소감은 어땠을까?

“원래 농구랑 축구를 해서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었는데, 예전에 제가 했던 운동들이 좀 쓸모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전에는 점수 내기에 급급했고, 운동하다 다치면 팀원들한테 미안한 게 먼저였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별로 존중받지 못했던 거 같아요.” -31살, 곽혜은

“요가나 춤은 좋아해서 많이 배우고 가르치기도 해봤어요. 그런데 파쿠르를 해보니까 지금까지 내 몸을 내가 완전히 알고 쓰지 못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들어온 ‘여자는 함부로 다리 벌리면 안 돼’, ‘과격한 행동을 하면 안 돼’라는 말들을 벗어나겠다고 머리로 생각은 하지만 막상 몸에는 아직 남아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30살, 보코


내가 당장 브라를 안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운동복 입을 때 노출 걱정하고, 스포츠브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하는 게, 운동을 하려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파쿠르 수업을 경험한 이들이 꼽은 최대의 장점은 단연 ‘해방감’이다. ‘사회가 허용하던 것에서 어긋나는’ 움직임을 한 자체만으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강사 리조의 설명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움직여보니 ‘브라가 상체가 움직이는 반경을 굉장히 제한하더라,’ ‘이것 때문에 충분히 자유롭지 못 했구나,’ ‘신체능력을 충분히 쓰지 못 했구나’ 생각하게 되거든요. 늘 입고 있는 브라를 좀 더 민감하고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예요. 말로 ‘탈코르셋을 해야 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몸의 수준에서, 경험을 통해서 느낀 결과죠.”

“운동을 선택할 때 남성들에 비하면 어떤 선이 그어져 있거나, 배제되는 분위기가 있거나, 아니면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어요. 스포츠 브라도 너무 답답할 때에도 안 하기가 민망해서 그냥 입고, 이런 것들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하는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25살, 박보현

“솔직히 브라하면 답답한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게 있잖아요.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저는 요즘 안 하는데, 사실 이 수업 듣기 전에는 하고 다녔거든요. ‘남의 시선’보다 ‘나의 편안함’이 더 중요하고, ‘나의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후에 변화가 생겼어요. 제가 바뀌었으니까, 제 주변 사람들도 제 영향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31살, 곽혜은


왜 우리는 특정한 동작들만 ‘정상적인 움직임’이라 정해놓은 걸까?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공간에서만 움직이고 있어요.”

여성에게 기대되는 코르셋 위에는 ‘사회가 사람들의 몸을 규정하고 제약할 수 있다’는 규범이 자리 잡고 있다. 규격화된 몸들만이 찬사를 받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이 배제된다.

“공공장소에서 허용되는 몸의 형태와 자세가 굉장히 제한적이에요. 앉거나 서는 것. 누가 길에 누워있으면 ‘공공장소에서 그러지 마라’, ‘더럽게 뭐하냐’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몸의 형태가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아니면 어느 신체 부위가 없으면 보기 싫다고 하고, 안 봐요. 실제로 우리 사회는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은 보이지 않는 사회잖아요. 그게 정상적인 거라고 생각하지만, 장애인이나 노인이 사회에 좀 더 섞여 있는 나라에서는 다양한 몸들을 볼 수 있거든요. ‘탈코르셋’처럼 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실천들이 이어지면, 그들도 사회 가운데로 불러낼 수 있어요.”


86살 노인이 파쿠르를 한다면 어떨까

근육질의 남자들이 건물 사이를 뛰고 오르며 도심 추격전을 벌이는 영화 <13구역>, <야마카시>는 파쿠르에 대한 선망과 함께 한편으로 대중에 ‘파쿠르는 절대 근력을 요하는 거친 스포츠’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당장 유튜브에서 한글로 ‘파쿠르’를 검색해도 10대 남학생들의 연습 영상이나 ‘아찔한 실패 순간 모음’ 영상들이 뜬다. 하지만 노인들을 위한 파쿠르 수업도 있다. 단순히 난이도를 낮춘 게 아니라, ‘낙상과 부상을 방지하는 법’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2015년 <에이피>(AP)가 인터뷰한 이 남성의 당시 나이는 86살이었다.


‘여성에게 가장 위험한 도시’를 뛰어다니는 여성들

지난 여름, 이집트 카이로 시내를 누비는 여성 파쿠르 모임의 활동이 국외 미디어를 통해 소개됐다. 이집트 최초이자 최대의 파쿠르 모임인 PKE에서 만든 여성들의 소모임으로, 히잡을 두르거나 두르지 않은 여성들이 섞여 지금까지 반년 넘게 코치의 지도에 따라 길거리에서 장애물 넘기와 점프를 연습하고 있다.

특별한 점은 카이로가 지난해 톰슨로이터재단이 꼽은 ‘세계에서 가장 여성들에게 위험한 대도시’ 1위라는 점이다. 성폭력 위험, 문화적 관행 면에서도 최악의 점수를 받은 ’여성이 거리를 마음 놓고 다니기 힘든 도시’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 정면으로 맞선 거리 스포츠로 극복하고자 한 것이 이들이 모인 취지다. 참가자 자이넵 헬랄은 <로이터>에 “이집트에서는 여자들이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 한다, 그게 길거리라면 더더욱 그렇다”고 어려움을 말하기도 했다.

박수진 기자 sujean.park@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women/864691.html#csidxa0bc5cdee73191680cd11f5ba99f2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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