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만나는 인문프로그램] 몸과 대화하는 시간1,2

3월 13일 업데이트됨

이렇게 자기 돌봄을 할 수 있게 꽤 오랜 시간동안 도움을 주는 곳이 바로 변화의 월담이다. 자기 몸을 돌본다고 할 때마다 이상하게도 자기 비하와 자기 비난에 자주 직면한다. 왜 그동안 몸을 이렇게 방치했느냐고, 왜 이런 간단한 동작 하나가 제대로 되지 않는거냐고, 왜 이렇게 몸이 어설프고 생각을 못 따라가느냐고, 자꾸 잰 걸음으로 앞장서서 어린 아이의 작은 보폭을 탓하는 못난 어른처럼 군다. 그리고 그런 못난 어른같은 나를 다시 탓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억지스럽게 긍정하면서 자기애로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냥 나는 내 몸이 시간 위에 자연스럽게 흘렀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내 몸에는 겹겹의 기억과 감정들이 쌓여 있다. 내 몸은 그것들과 무관하고 중립적으로 홀로 서 있을 수 없는 지대이다. 어떤 식으로든 평가되거나 스스로를 판단하면서 나는 내 몸과 어렵고 낯선 관계를 유지해왔다.

- <몸과 대화 몸일지 중>



월담이 성미산 마을 커뮤니티 공간인 동네책방 개똥이네 책놀이터와 함께 10주차 인문 프로그램을 주최하였습니다. 경직된 몸을 풀어주고 위태로운 마음을 돌보는 일상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몸 움직임, 인문학 텍스트, 몸일지를 한 수업에서 활용하며 말에만 그쳐있던 ‘현존’, ‘소비’, ‘중독’, ‘트라우마’, ‘치유’라는 다섯 주제의 인문적 가치들을 몸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2020년 10회씩 2번, 총 20회차 동안 꾸리고 참가자들의 몸일지와 움직임을 그린 일러스트를 모아 책자로 출판하였습니다.


내 일상은 갈수록 나의 몸을 휘거나 굳게 만들었는데, 유지보수를 하듯 하나하나 고치는 수밖에 없었다. 고치면 다시 되돌아가고, 고치면 다시 되돌아가고. 이곳에서의 재미난 활동들을 이어나가면서 내가 나의 몸과 다시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고쳐야 할 대상, 마치 사물과 같이 정없는 존재가 아니라 어깨동무를 한 채로 같은 바람에 흔들리고 춤추는 말랑한 존재로.


인문 프로그램에서 사용한 인문 서적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리퀴드 러브 : 현대의 우울과 고통의 원천에 대하여>,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 소비사회가 잠식하는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애슐리 몬터규 <터칭 : 인간 피부의 인류학적 의의>, 벨훅스 <경계넘기를 가르치기>

가보르 마테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 당신의 감정은 어떻게 병이 되는가>

안토니오 다마지오 <느낌의 진화 : 생명과 문화를 만든 놀라운 순서> 등



새로운 몸 만나기부터 지금 여기에 몸으로 현존하기, 무한 소비의 굴레를 탈피하고 스스로 몸 깨우고 돌보기, 고통을 견디기 위한 적응기제로 중독과 의존 이해하기, 몸의 단절로 인한 내면의 상처인 트라우마 들여다보기, 함께 몸을 살리는 문화 만들기까지 2020년을 몸으로 만나고 개인의 이야기를 공론장으로 꺼내주신 대화하는 몸들께 감사와 사랑 전합니다.


몸과 대화 1은 코로나 상황으로 첫회와 마지막 회만 오프라인으로 진행되었는데요, 전 회차 몸으로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 와중에도 함께 움직임과 목소리, 글을 나누며 현재 처한 어려움에 연대하고 지지를 나누는 동료들과의 연결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컴컴한 길을 따라 다같이 공원에 갔다. 옆 그룹에서는 기체조일까 태극권일까 싶은 것을 고요하게 하고 있었고, 실은 그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이래도 되나? 싶지만 왜 안돼 하는 마음으로 파트너와 맘껏 깔깔거리며 몸으로 상호작용했다. 화면으로만 만나오던 분을 몸으로 만나 궁금했던 것 이야기도 나누고 상호작용하니 많이 즐거웠다. 즐겁다는 말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채워지지 않았던 접촉의 욕구가 채워졌다는 것, 말과 이미지로 상대방을 만날 때 굳는 얼굴 근육과 어깨를 인지하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상황, 성산의 한 공원에 이전에 없던 밤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기분 좋음.


1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손길이 닿았다. 다 다른 호흡과 손길이 내 몸에 겹겹이 쌓인 느낌이다. 파트너와 서로에게, 나에게, 움직임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책방으로 돌아오니 따뜻하고 가벼운 이불이 몸을 감싸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온 것 같기도 하고. 상대방을 믿고 몸을 맡겨보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기도, 나와 맞닿은 사람의 손길과 방향성을 느끼고 읽는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몸이 더 분명하게 여기에 존재함을 느낀다. 몸이 몸 자체로 존중받고, 살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몸(나)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몸(나)을 돌보려 움직이는 것은 혼자서 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타인과의 경험을 통해서 나에게 기억을 선물해주고-나와 만나는 방법이나 자세들을 배운다.




이제 나는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를 하면서도 내 몸을 관찰한다. 꼬리뼈는 중심을 잡고 내 무게를 잘 받아주고 있는지, 호흡이 몸 깊이 들어갔다가 나가는지, 턱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몸이 앞으로 기우는지, 아래로 쳐지는지, 허리가 경직되어 있는지, 다리는 편안한지..


그게 꽤 많은 정보를 준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에 대해서, 그사람이 나에게 느끼고 있을 감정에 대해서도 조금은. 몸을 쓰는 법을 너무 몰랐다. 하나씩 배우고 있다.이제 시작이다. 급할 것이 없다.


몸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몸을 연결 연결된 감각이 살아있는 구조물로 인식해보고 있다. 나에게 종속된 무언가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무언가로 바라보는 일. 손 따로 발 따로 목 따로 어깨 따로가 아니다. 몸을 흔들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흔들리듯 모든 구조가 함께 열린다. 열고 닫기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고 싶다.


잘 때, 일을 할 때, 서 있을 때, 오늘의 움직임은 척추에게 ‘너 안녕하냐.’고 묻는 방법을 알려준 것 같다. 누군가가 요즘 어떠세요, 몸은 괜찮으세요 할 때 자동 응답기처럼 ‘괜찮아요.’ 답하게 된다. 그 관성을 깨는 것이 어려웠다. 척추도 그럴 것이다.


굴에 들어가 발마사지를 했다. 손과 발을 마주잡으니 내가 나와 인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최근에 어디선가 인생은 혼자 사는거라는 말을 듣고 우울해했는데 생각보다 재미난 기분이었다. 발로 땅을 밀며 다닐때 수제비 반죽하듯이 발바닥과 바닥을 찰싹찰싹 움직였다. 발에게 우선권을 주니 어디로 가는지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잘 지나갔다. 그때부터 좀 더 자유롭고 긴장이 풀렸다.





- <몸과 대화하는 시간>참가자들이 몸으로 쓴 회고록, 몸과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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