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erences]애슐리 몬터규, <터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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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인의 세계에서 소통은 미각, 후각, 촉각 같은 ‘근접 감각’보다 시각, 청각 같은 ‘원격 감각’에 훨씬 더 기대고 있는 데다, 근접 감각은 대체로 꺼리기까지 한다. ... 비언어적 세계가 경험세계로부터 사실상 배제될 정도로 우리는 언어적 소통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그만큼 경험세계는 심각하게 빈곤해지고 있다. ... 감각 언어 가운데 으뜸은 촉감이다. 촉감을 통해 주고받는 소통은 인간관계, 즉 경험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더없이 강력한 수단이다. 접촉이 시작되는 곳에서 애정과 인간애 역시 시작된다.


접촉에 따른 동물과 인간의 반응을 다룬 연구들을 조사하다 보면, ‘손길을 경험한’ 사람/동 물이 손길을 최소한도로 경험하거나 일정 경험하지 못한 사람/동물에 비해 건강 및 각성도, 반응성이 두드러지게 향상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에 깊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 갈수록 분명해지는 사실은... 촉각 자극 여부에 따른 여러 차이가 신경 및 면역 체계 구조 및 관련 기능의 중대한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부에 면역 기능이 있다는 증거는 날로 쌓여가고 있다.


다른 어느 감각보다 확실하게 내가 아닌 무언가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바로 그 사실이, 촉각에는 그만큼 나 자신의 주관이 가장 많이 개입된다는 증거가 된다. 내 몸의 경계 너머 ‘외부 어딘가’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무언가를 느낀 때면, 나는 또한 나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타자와 자아를 동시에 느끼는 것이다.


사물과의 교류가 어떤 성격을 띠느냐는 결국 접촉방식이 결정한다...촉각이 여느 감각과 다른 점은 촉각을 느끼려면 우리가 만지는 대상의 몸과 그것을 만지는 우리 자신의 몸이 언제나 동시에 현존하면서 또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다. 보거나 들을 때와 달리, 무언가에 닿을 때면 우리는 그것이 실재함을 우리 내부, 곧 우리 몸속 깊이 실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