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되지 않는 경험을 나누는 것은 늘 긴장되는 일이야. 그 사람의 말과 말이 아닌 느낌을 왜곡 없이 전달함과 동시에 나의 느낌도 잘 인지해야하기 때문일까? 어제 자기들과 신나게 원단 및 부자재 쇼핑을 하고 다소 급하게 넘어가 처음 놀이 이론 수업을 가르쳐 주시고 석사 논문 부심이기도 하셨던 김지연 교수님을 뵈러 갔던 이야기를 조금 부담을 덜고 싶어 이렇게 편지로 전해보려고 해.
나도 졸업하고 너무 오랜만에 뵙는 거라, 또 졸업할 즈음에는 교수님이 무슨 센터장을 맡으셔서 너무 정신없어 보이셨던지라, 만나기 직전에는 좀 긴장이 되었던 것 같아. 어떤 표정과 행동으로 맞이하게 될까? 그런데 그래도 높은 건물도 없고 멀리 산도 보이는 따뜻한 분위기의 동네의 에너지에 기대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하고 있었지. 근데 만나는 순간 서로 너무 반가워하는게 느껴져서 꼭 안고 그간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확 돌아가게 되더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주제를 몇가지 이야기 해보자면
1. 교직원으로서의 생활
벌써 배화여자대학 유아교육과에 임용되신지 4년이 지났는데 열정의 불씨를 피울 친구들이 왕왕 보였던 옛날과는 많이 다르시대. 그냥 자격증을 따러 온 친구들도 많고, 근데 해야하는 건 안해와서 매일 숙제 왜 안하냐고 이야기 하느라 지치고. 수업시간에는 영상 보는 친구들도 많고 무기력하거나 공황이 있는 친구들도 많고. 학교가 있는 서촌이라는 동네를 너무 좋아하는데 학교만 들어가면 마음이 힘들어서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인왕산 쪽을 막 걷거나 뛰고 바로 아래 있는 젤라또 집을 간다면서 태국음식 저녁에 이어서 맛있는 젤라또도 사주셨는데 꽤 맛있어서 자기들이랑도 꼭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어.
3. 교육에서의 ‘움직임’
그래서 더더욱 앞으로 사람의 발달에 있어서 몸이 중요하게 될 것 같은데 아직은 주목할 수 있는 인재도 분위기도 타기 직전인 것 같다고 이야기 하시더라고. 그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느껴온 것들인 것 같아. 분명 체육교육 등과는 다른 부분인데 (스포츠라기보다는 내가 삶에서 원하는 만큼 편안하게 움직이고 표현할 수 있는 차원 포함) 그걸 설명할 언어도 경험도 없다고 느껴졌어. 그리고 아무래도 박사를 해야할 것 같다면서 해외를 가도 좋고 지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게 있으니까 국내에서 일 같이 하면서 박사를 하고 엄청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으로 포닥을 가는 것도 괜찮을 수 있다고 하셨어. 김명순 교수님은 그리고 은퇴하시고도 엄청 바쁘시대ㅋㅋㅋ
4. 놀이와 행동유발성(affordance)로서의 옷
오늘 뭐하다가 왔는지 물어보셔서 동대문 시장 다녀온 이야기 하다가 이번에 경기문화재단과 하는 옷을 만들고 놀이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너무너무 재미있는 프로젝트일 것 같다면서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물어보셔서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러다 사람 옷이라는게 정말 놀이에 되게 중요한 부분인데 연구가 많이 안된 부분인 것 같다는 얘기 까지 이어졌지. 그러다 혹시 초등 고학년 정도 아이들 30명 정도에게 FGI로 놀이와 옷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연구 해볼까? 하는 이야기까지 이어졌어. 정말 하고 싶으면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같이 논의하며 연구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서! 뭐 할 거 있거나 할 때 그냥 연구실 놀러와서 앉아서 글 써도 좋고 자기는 회의 갔다오겠다고 하심ㅋㅋㅋ그러면서 나의 질적연구방법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면서 교수님은 박사 때 코스웍으로 배우셨나요? 했더니 아니 자기도 그냥 맨땅에 해딩하면서 했다고 그냥 하고 혼나고 요러면서 또 배웠다고 하시더라고ㅋㅋㅋ간이 좀 있고 욕심을 내고 싶으면 IRB라고 해외 연구윤리에 맞춰 동의서를 받고 보내서 승인을 받으면 연구를 할 수 있는 절차를 밟으면 된대. 그렇게 내고, 학회 다니고 하는 것도 윤일 리조 선생님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5. 자연과 달리기
아직도 교수님은 분당에서 경복궁까지 엄청난 통근을 하고 계시대. 독립하셔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씀드렸더니 (여기도 독립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 그러니까! 그게 쉽지 않네 하시면서도 인왕산 밑에 아주 오래된 빌라가 있다면서 산책하며 보여주시기도 했어. 그리고 요즘 잠이 잘 안와서 4-5시간밖에 못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10시 반 정도인데도 아파트 앞을 그냥 마냥 달리신대 흑흑 그리고 자연이 성인과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자유로움과 힘을 크게 느끼고 있어서 내년에는 산에 들어가실 예정이라고 하시네? 그래서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했어ㅋㅋㅋㅋㅋ더불어 학교 다닐 때는 잘 알지 못했던 우리 가족 얘기도 하고, 동생들 이야기도 하고, 강릉 얘기도 하고, 세계 놀이터 탐방 한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6. 출판 의뢰
최근데 제주시에 있는 약간 와일드하게 몸으로 노는 철학을 가진 어린이집의 선생님들과 Loose Part에 대해 원고를 쓰고 있으신데, 마침 출판할 곳을 찾고 계셨대. 100페이지 정도 컬러인데, 엄청 좋은 종이를 쓸 필요는 없고 종사자들끼리, 혹은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나눠볼 수 있을 정도? 100부에서 단가가 비슷하다면 500부 정도까지 생각 중이고, 월담이 관심있는 분야랑도 엄청 다르지는 않으니까 혹시 선생님들끼리 돈을 모아서라도 할 수 있으면 할 생각이 있어서 초기 비용이나 계약 방식 등을 논의해서 알려주면 진짜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어.
집에 돌아오는데 행동유발성에 대한 논문도 찾아보고 싶고, 연구계획서도 써보고 싶고, 위험감수놀이 연구를 먼저 했던 영은이한테 연락도 하고 싶고, 동작교육에 대한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우리 다같이 산도 가고 싶고, 출판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같이 옷도 만들고 싶고 그렇더라고. 그런데 너무 많은 동기 유발들이 밀려오니까 잠도 안오고 감당이 안되어서 자기들 부자재 쇼핑도 궁금하고 한데 소통이 너무 어렵더라고. 그래도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창구가 있는게 너무 소중하다.
이렇게 이전의 인연과 다시 맞닿으니 우리가 지금껏 해온 일들의 의미가 더 귀하게 느껴지는 거 있지. 그 과정에서 지지고 볶으면서도 함께 있어줘서 고맙고, 아무리 두려운 일도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주는 존재가 되어줘서 고마워.
지금은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잘 넘어가고 있으려나? 매일의 시간들이 하나하나 너무 소중하고 귀하면서도 밖에서 자고, 집도 충분히 못 돌보고 하느라 지쳤을까봐 걱정이 된다.
런던에서 놀이터를 함께 탐방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영희의 편지를 읽으니 또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많아요. 반대로 영희는 나에게 던져준 질문들에 대해 새롭게 느낀 것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영희의 어릴적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에게는 또래 친구들과 놀이하는 시간이 나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최근에 쓴 책에도 약간은 들어있었던 내용이기도 한데, 저도 삼남매의 구성원이지만 점점 부모님의 신경이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을 기억하지는 못해요. 다섯살 무렵 막내가 생겼고, 그 전에는 부모님이 발달이 느린 쌍둥이 동생을 케어 하느라 좀 힘들어하셨던 것 같거든요.
본인들의 커리어를 위해서 (엄마는 개원 초기, 아빠는 정교수 초기) 굉장히 몰입하면서 태워내는 30대의 시기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두 개나 생기면서 두 분은 아프기도 하고 참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저는 너무 괴로우면서도 그 분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더 이해했고요. 어느날은 부모님이 저를 앉혀놓고 이야기 하기도 했어요.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드니 네가 좀 봐줘라. 그 때는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쿨하게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살펴보니 좀 상처였나봐요. 지금도 그래서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는 누군가가 주는 돌봄은 잘 받지 못하겠는 것이 강박처럼 남아있는 걸 보면요.
돌봄을 덜 받는 것의 당위성은 아픈 둘째와 몸이 약하고 사건 사고가 많은(실제 교통사고나 독감 등) 막내와 는 달리 운좋게 건강하고 야무지게 태어난 것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동생이 힘들 때 혼자 잘 태어난 너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사는 것이라는 비난을 자주 했었거든요. 그 때부터 내 힘듦은 나만 인지할 수 있고 돌봐야, 혹은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기 전까지 점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집 주변을 탐색하고 같이 놀 친구를 찾고, 모험하고, 학교에서 키우는 토끼를 관찰하며 이름을 지어주고 풀을 먹이로 주기도 했어요.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그 몰입감이 너무 좋았어요. 머리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것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삶이 너무 어두워지지 않도록 일상에서 벗어난 놀이의 시간을 만들고, 나만의 공간을 찾아 헤매는 것이 어린이 윤일의 자기 돌봄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갑자기 생각이 난 건데, 집 근처의 숲에 나무위의 집을 짓고 마법 부엉이랑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하늘을 날기도 하는 ‘사라’라는 책을 진짜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런던 갔을 때 텀블링 베이와 작은 나무집에서 넷이 복작복작 있었던 경험이 엄청 행복하게 다가왔어요.
런던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니 제가 잘 놀고 싶은 욕구는 행복하고 즐겁지만 허무하지 않은 경험으로 삶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네요. 사람과 관계 맺기가 힘들다고 생각해 새로운 사람들이 많으면 설레면서도 경직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놀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관계들을 많이 만들며 서로를 알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이익을 줘야 한다거나 무언가를 해줘야한다는 마음을 벗어나 함께 즐겁게 노는 파트너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런던의 모험놀이터를 보면서 한국에도 저런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도 그 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자발적으로 공간을 돌보는 시민들, 위험하게 놀아도 된다는 부모와 교사의 의식 등 얼마나 많은 문화들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착잡하고 막막해지기도 했답니다. 영희, 혹은 미래들은 런던에 다녀와서 어떤 상상들을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사실 이전부터 답장을 쓰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답 회신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으로 쓰는 글은 윤일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어요.
갈등하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그만큼 우리의 추억도 쌓이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생기고… 지금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자연스레 피어오르는 이야기들을 전하려고 해요.
-이름빼고 다 닮은 우리? ㅋㅋ
윤일이 편지로 전해준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참 흥미롭게 읽었어요. 닮은 점이 많지만 또 매우 다른 맥락과 환경에서 자랐구나! 알게되는 재미도 있었답니다.
저는 세자매 중 막내고 언니와는 3살, 5살 차이가 나요. 물리적 막내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집안에서 챙기고 돌봐야 하는 ‘막내’ 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케어가 제일 어린 막내에게 향하면서 언니들은 서로 더 돈독해졌죠. 언니들은 방을 같이 쓰고 서로에게 교환일기도 쓰고 영화도 종종 보러가는 등 친구처럼 참 재미나게 지냈는데 저는 늘 어리다고 안 껴줘서 속상했던 기억이 나요.그리고 자연스럽게 언니들 보다는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윤일은 어땠나요? 부모님의 관심과 케어가 점점 동생에게 향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는지, 만약 그랬다면 어린 윤일은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들었는지 문득 궁금하네요.
엇 곧 탑승시간이 다가와요..! 비행기에서 마저 이어가 볼게요 :)
(비행기는 무사히 잘 탔고^^ 기내식은 매우 짰고ㅠㅠ 통로자리를 사수해서 다리를 잘 털어주며 가고 있어요. 얼른 보고 싶어요 윤일 그리고 미래들)
편지를 쓰니 좋은 점은 윤일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는 거에요. 💛
윤일을 생각하면 아이같은 환한 미소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특히 몸으로 만날 때 피어나는 표정과 웃음소리는 상대방도 아이로 돌아가게 해주는 신기한 매력이 있지요.
작년 춘천에서 열었던 <우리는 모두 몸으로 일한다 : 창작자편> 워크숍 땐가, 윤일과 파트너가 되어 만났는데 리조의 설명은 전혀 따르지 않고 (ㅋㅋ) 과감히 규칙들을 변주하고 새로운 놀이들을 생성하며 놀았던 순간이 기억에 오래오래 남아요.
‘어? 이렇게 해도 되는건가?’ 싶은데 앞에서 신나게 웃고 있는 윤일을 보면 호기심과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몸이 먼저 움직이던 그런 순간 이었어요. 리조는 그 모습을 보고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좋아하며 격려해 줬던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해방감도 느꼈던 것 같아요. 이 해방감이라는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됐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혹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 부터) 늘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고 정해진 규율을 내재화 하며 지내온 삶. 그래서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일상에 체화되어 버린 수동성. 저에게 단단하게 뿌리내린 그 감각을 비트는 경험에서 오는 해방감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으로 몸으로 놀았던 짧은 순간에 저는 어디까지 경험하고 온거죠? 놀이의 세계는 알면 알 수록 참 위대한 것 같아요…! 쓰고보니 웃음, 변주(변형), 호기심, 해방감 모두 놀이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도 들고요.
어제 영희가 바쁜 일상 중에서 캐치업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말에 놀이의 세계는 생각보다 무서울 수도 있다며 맥락없이 대답했던 것이 마음이 쓰여 이렇게 편지를 써요. 실은 저에게도 일을 놀이로 만드는 것이 끝없는 모순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참 어려운 과제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가장 목적 지향적이어야 하는 시간에서의 중심을 ‘나’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영희는 어릴 때 어떤 친구들과 즐겨 노는 아이였고, 그 시간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나요? 저는 3살 때부터 12살까지 저와 나이가 엇비슷한 아파트에서 살아 왔어서 놀이 동료들이 대부분 아파트에 같이 사는 친구들, 혹은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었어요. 오늘은 혹 우리의 작업에 참고가 될까하여 그 친구들과 함께 노는 사이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짚어보고 싶어요.
1. 탐색하기 : 이 과정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짧기도(직관을 믿는 경우),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기도 했었어요. 그래도 아주 오래 걸리는 경우는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일단 놀아보고 불편한 상황(흥이 떨어지는)이 계속 반복되면 안 놀고 말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2. 제안하기 : 물론 심심함이 전제가 된 상태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환경의 자원, 그리고 그 친구의 집과 우리집에 있는 장난감과 같은 각자의 자원을 고려해서 놀이를 제안해요. 제안할 때는 지금까지 지켜본 그 친구의 성향을 생각해서 웬만큼 둘 모두가 흥미를 가질만한 제안을 해요. 거절 당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제안을 다시 고심해서 한다 (자신 없어도 ‘아니 너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나라면 바로 하겠다~’ 살짝 페이크 필수)
3. 합의 하에 규칙을 정하기 : 이전에 이 놀이를 했던 친구가 주도적으로 경험을 공유하면서 규칙을 정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서로 경험한 규칙이 다르다면 합의를 하기도 하고요. 웬만하면 놀이를 처음 제안한 친구의 말을 따르려고 했던 기억도 나고, 역할을 나누는 경우에는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서로 원하는 역할을 하지 못해 시무룩하다 놀이에서 빠지는 경우도 있어요.
4. 일종의 평가하기 : 그 친구들과 그 놀이가 아주 재미있었다면 다음에 또 하자고 약속하거나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과 노느라 멀어졌다가 또 연결되었다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5. 예외 : 짝수여야 하는데 너무 어리거나 중간에 가야하는 친구가 있을 경우에는 ‘깍두기’로 참여해요. 다들 규칙을 조금 어기거나 자기 역할을 잘 하지 못해도 함께하는데 그나마 더 재밌는 것을 아니까 조금씩 봐주는 거죠. 그리고 새로 전학을 오거나 이사를 와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는 꼭 정이 많은 한두명의 친구가 ‘이 놀이는 이런 거야’ 이야기해주기도 해요.
이렇게 쭉 나열해보니 왜인지 험난하게만 느껴졌던 월담의 일하기 방식이 놀이와 굉장히 비슷했구나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엄청난 자율성에 기반했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일을 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참고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게 익숙해서인지 힘든 건 ‘뭐 이런 걸 가지고’하며 티를 내지 않았고, 그러다보면 결국 일은 참는 것이 되었어요. 내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더 다른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참기 힘들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놀이처럼 느껴졌다는 지점은, 그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도 순탄하지도 않았지만 어떤 지점에서 서로 절대 참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폭발하며 매 년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체크 해볼 수 있었다는 거에요. 엉엉 울면서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포기할 수 있었고 그래서 놀이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인내심이 깊고 잘 싸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재미’ 였답니다.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가 싫었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느끼는 설렘과 감탄이 좋았어요. 죽기 전까지 그런 감각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책을 읽거나 전시를 보며 영감을 받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반면 누군가가 놀이를 하는데 있어서 나의 자율성을 뺏으려 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을 하라고 하거나), 몰입을 지속적으로 깨려고 하면 조금 과할 정도로 흥미를 잃고 심드렁해져 혼자만의 방으로 돌아가거나 반대로 이 깍 깨물고 몸이 아파할 때까지 몰아치며 끝을 내는 업무로 만들곤 해요. 그만큼 우리의 놀이 실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잘 살피고, 후자의 마음이 되지 않도록 해나가 보려고 합니다.
그 시간에서 어떤 마음이든 들어줄 수 있고, 서로에 웃김을 소중히 여기는 굿 리스너가 되어 주고 싶어요.
"일이 정말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이건 어쩌면 '일은 놀이가 될 수 없어'라는 전제 속에 나오는 나의 의구심이 반영된 질문일 수도 있겠어요. 오늘 아침 출근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장으로 오는 길에, 따라온 이 질문은, 어쩌면 정말, 일을 놀이처럼 재밌게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떠오른 질문이기도 할거에요.
오늘도 이런 저런, 저에게 맡겨진 일, 하기로 했던 일들이 놓여져있고, 그 일을 제가 어떻게 수행할지, 선택하고 있어요.
오늘 오후 일 중 하나는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지역 취재를 하는 활동을 제가 안내해야하는 일이에요.
그 일을 준비하기 전에, 어떤 학생들인지, 좀 더 알기 위해, 다시 한번 활동 신청서를 보고자 해요. 학생들을 내가 일해야하는 대상으로 보기보다, 사람으로 느끼기 위해.. 일을 일로만 처리하려 하지않고, 조금이나마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활동이 되기를 바라며..
세계 놀이터 연구의 시작은 우리가 2018년 처음 바르셀로나에 가서 장을 잔뜩 본 후 길을 나서다 만난 조그만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탔던 때였을까. 그 전까지 나는 사실 해외의 놀이터가 한국과 다를 수도,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못해 봤었나봐.
우리가 만난 바르셀로나의 놀이터들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게 길을 걷다가 자주 보였고, 플라스틱보다는 주로 나무로 되어 있었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관광 산업의 중심지인 상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바로 앞에도 평범한 놀이터가 2개나 있다는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어. 그 사실에 놀랐던 걸 보면 어쩌면 나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아주 신자유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었고, 큰 가치가 있는 땅에 놀이터가 들어서지 못하는 상황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나 싶더라고.
삶에서 많은 중요한 것들은 너무 쉽게 우선순위에 밀리곤 하지. 몸도 그렇고, 인권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아마 아동권, 놀이권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야.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아마 ‘미래’에 큰 희망이 없게 된 때부터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 내 역사를 짚어보면 아마도 언제 사고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체감한 세월호 사건 때부터. 삶을 너무 소중하게 여기면 절망적이겠다는 방어기제가 발동 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언제 죽어도 별로 아쉽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많은 몸들과 함께 읽어왔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문구처럼 자기애는 때로 생존을 어렵게 한다고 하잖아. 나,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일수록 채영이 그랬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삶, 그리고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변화의 동력을 내기 힘든 걸지도 몰라. 그래서 ‘중요한 것’들보다는 ‘(떄로는 삶에 해가 되기도 하는)관성이 강한 것들’에게 삶을 내어주게 되는거지. 혹은 반대로 관성의 담을 넘어 변화를 만드는 한 발의 시도에서 부터 자기애는 시작되는 걸지도 모든다는 생각도 들어.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니 우리가 만든 ‘변화의 월담’이라는 이름이 또 다르게 다가온다.
약간 과장을 하자면 그 나라, 혹은 도시, 커뮤니티가 놀이와 놀이터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드러내는 걸 수도 있겠다. 각 나라별로 놀이, 놀이터에 얼만큼의 비율, 혹은 크기의 예산을 측정하는지 비교해보는 연구도 아주 재밌겠다. 혹은 아동 1명 당 예산을 들이는 비율도 유의미 할 것 같고 말이야. 아마 우리가 세계의 놀이터를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직관을 가시화 할 수 있는 소중한 데이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편지를 읽고, 참으로 다정하고 따뜻한 소영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삶에서 누구나 내가 무너지면서도 응원하고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다정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온전히 서기 위해 꼭 필요한 일부까지 내어주지 못했다고 해서 미안해해서는 안되는 거더라고요. 어떤 아이에게 나를 다 바쳐서 최선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이미 최대한을 준 것이었고, 더 줄 수 있는게 없었던 것일수도 있어요.
월담에서도 비슷한 마음이 든 적이 많아요. 내가 아프고 무너지는데도 조금만 더 고생하면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리조 수민이 덜 힘들지 않을까 매 년 처절하고 소름돋게 느끼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니더라고요. 나를 부수면서까지 내어 주는 사랑은 그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도 잘 가닿지 않아요. 그리고 일종의 ‘오만’일 수도 있어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상호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갈 수도 있는 거죠. 상대도 비슷한 마음으로, 어쩌면 더 큰 마음의 사랑을 주고 싶었는데도 말이에요.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니까 ‘존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아동, 때로는 여성, 소수 인종, 성소수자,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소영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어떤 층위에서는 기득권이기도, 당사자이기도 한 저는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껴요. 죄책감, 부채감, 오만함, 조심스러움 그리고 두려움, 답답함, 수치심, 경계심, 분노 등이 그 감정들이고요. 저는 어린이와 청소년 시기에 후자의 감정을 가장 많이 느꼈던 감각이 남아있네요.
그 때 바랐던 것은 별 것이 없었어요. 나를 표현하고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아마도 다른 어른들이) 잘 들어주기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듯 나도 그들이 힘들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그 때는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이 되는 것. 아마 지금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이 바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요?
이 두 가지가 결코 쉽지는 않아요. 내 목소리를 잘 내기 위해서는 내 생각과 감정을 잘 알아차리는 기민한 감각이 있어야 하고, 언어라는 넘기 힘든 오해의 강을 넘어 최대한 적절한 표현으로 이야기해보고, 실패하는 충분한 경험이 필요할 거에요. 그리고 후자의 경우 역시 내가 주고 싶은 것을 넘어 상대가 어떤 생각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인지하기 어렵다면 언제든 공유할 수 있는 신뢰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고, 어쩌면 상대 스스로도 모를 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수많은 실패로 연습해야 하니까요.
미래들과의 관계에서도 이 연습을 지난하게 하고 있음을 느끼고, 만약 학교를 만든다면 서로 미숙한 부분이 다를 아이들이 마음껏 이 두가지를 실험해볼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가장 치열하게 몰입하고 즐거움으로 해결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는 현장이 놀이터와 교실이었으면 합니다. 그 과정에서 거짓말하지 못하는 ‘몸’은 아주 솔직하고 든든한 동료가 되어 줄거에요.
심심함에 대해서, 막연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저에게 있었는데, 윤일의 편지 속에서 ‘심심함의 소중함’이라는 단어가 저의 생각을 넓혀주었어요.
제가 아침에 일어나 집에 있는 식물을 한동안 바라보는 것, 퇴근 후 집에 와서 아무것도 안하고 잠시 앉아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제게 주는 심심함의 시간이었겠구나 싶기도 했어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해’라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만끽하는 것. 때로는 핸드폰을 의도적으로 멀리두고, 무언가 계속 보려는 날 적극적으로 심심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런게 ‘심심함의 소중함’이었구나 싶어요.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백무산, 정지의 힘-
심심함을 느끼는 건,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인 것 같기도 해요. 어쩌면 이 심심함이 놀이의 중요한 원동력이겠다 싶어요. 심심한 건, 단순히 쉬는 것과 달리, ‘무언가 놀거리 없나?’하며 씨앗처럼 꿈틀거리는 상태 이니까요. 놀거리, 놀 사람을 찾는 시선이 나에게 있을 수 있다면, ‘외로워, 우울해’와는 다른 미래로 나아갈 수 있으니깐요.
심심한 상태를 참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네요. 그런 면에서 ‘기본 소득’이라는 제도도 결국 나와 우리들에게 심심한 시간을 늘려 주어야 할텐데.. 라는 생각도 들어요.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하는 의무감 속에서 일하다가 지친 나를, 즉 다시 일할 힘을 회복하기 위해 쉬는 시간을 갖는 패턴이 아니라, 정말 심심한 상태.
어떤 책임감, 의무감, 지침,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심심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기본 소득’이 의미있는 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임금 노동에서 벗어나도, 더 많은 자기 계발의 압박감과, 더 많은 콘텐츠 소비 속에서 수동적인 재미만 느끼게 된다면, 기본 소득이라는 제도도 결국 나와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분명 기본 소득은 매력적인 제도로 보여요.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에 있어서 ‘시민 참여’를 일상 속에서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 노동에 있어 ‘임금 노동’의 관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참 어렵겠구나 생각했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결국 현재의 시민 활동이 ‘여가 생활’이 되어야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이 시민 참여 방식을 예술과 접목하고 싶어했던 저의 여정이 다시 떠올랐어요.
하지만, 기본 소득은 정치적인 맥락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정책이다보니, 사실 저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어요. 정치의 영역은 워낙 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하거든요. ㅎㅎ 대신 저는 AI의 확산을 보고, 어쩌면 사람들에게 심심한 시간이 더 늘어날 수 있겠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조만간, 윤일 말 처럼 ‘잘 노는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면에서 제가 주목하고 있는 단어는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이랍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수련회를 가면 으레 하곤 했던 레크리에이션이 앞으로 점차 새로운 주목을 받지 않을까 예상해요. 단어도 다시 보니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다시(RE) 창조성(CREATION)을 충전하는 의미를 담고있는 것 같아 보여서요.
만화가 예전에는 음지의, 비주류의 문화처럼 여겨지던 시절에서 지금은 많은 콘텐츠들의 원작이 되어줄 정도로 문화의 중심에 서있는 것처럼, 레크리에이션도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고, 가볍게 게임하는 정도로 여겨진다면, 점차 그 깊이와 중요성이 높아질 것 같아요.
윤일이 이야기해준 놀이의 특성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사실 제가 표현예술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그 놀이였고, 그런 놀이는 제 삶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되어주었거든요. 단순히 웃고 즐기는 게임을 넘어서요.
그런 레크리에이션을 만들고 싶고, 특히 성인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곳이 바로, 제가 만들고 싶은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랍니다.
“아이가 노는 모습대로 성인이 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놀이의 중요성에 더 공감해줄 수 있는 기회가 될까요?”
내가 어릴 때 어떻게 놀았지, 곰곰이 되짚어 보다가 갑자기 마음이 서늘해지는 거예요. 나 말고 다른 존재가 떠올라서 그랬는데, 바로 저의 조카들이었어요. 이제는 조카들의 삶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래도 셋이 옹기종기 모여서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걸 보면 솔직히 마음이 불편해요. 저는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돌봐준 날들이 많으니까요. 그때 저는 같이 어렸기 때문에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저도 그런 종류의 돌봄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더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아요. 어른의 손길이 아주 많이 필요한 아이를 하루 종일 케어 하는 일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체력적으로 지치고,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억울한 날이 많았던 저는 아이가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놀이를 제안하곤 했어요. 뽀로로 볼까? 병원 놀이 할까?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놀아줘야 하는 역할 놀이는 피하고 수동적으로 있을 수 있는 역할 놀이를 선호함) 그래야 제가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고,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바닥에 블록과 레고를 부어주고, 색연필을 꺼내주고, 저는 무기력하게 옆에 누워 있었어요. 아이가 고모 이거는 자동차야! 집이야! 고모는 무슨 색을 좋아해? 이런 질문도 귀찮았어요. 사실 어른은 그저 아이의 행동을 읽어주고 지켜봐 주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저는, 적극적으로 놀아주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제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은, 그때의 경험 때문이었어요. 아이에게 핸드폰을 쥐어주고 핑크퐁을 틀어주는 것이 제일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달콤한 유혹에 항상 지고 말았어요. 육아 중 제일 기쁜 순간은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어요. 소중한 존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곤히 잠들어 있는 순간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것이 양가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실 대다수의?(어떤?)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고,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자연 앞에서 궁금하고 신기해서 탐색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엄마 한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게 될 때, 엄마들은 소진되고 (고모도 소진되고) 아이는 집 안에서, 가장 손쉽게 재미를 주는 핸드폰과 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카들이 핸드폰만 하고 놀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면 어떤 형상이 될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했던 거예요. 물론 그것이 경험의 전부가 아니고, 조카들은 나와 다른 존재니까 무엇도 단언할 수 없지만 그 서늘함은 저의 죄책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라는 존재가 아이들의 몸에 어떤 시간을 새겼을까, 그런 공포심이랄까요.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했고, 아이들과 충분히 교감하면서 놀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이 생각보다 커다랗다는 것을 깨달아요. 그렇다면 역으로, 놀이의 중요성을 이미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 의문도 들고요.
윤일이 포터에게 쓴 편지 중에 놀이의 특성을 찬찬히 읽어 보았어요.
“본인이 주도적으로 언제라도 시작하고,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다시 시작하며, 언제 하더라도 어려움이 없이 과정에 집중한다.”
이 부분이 특히나 마음에 많이 남더라고요. 사실 놀이는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고 (나이도, 시간도, 장소도 구애받지 않고) 무엇보다 미래들과 잘 놀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 내가 회복할 수 있는 감각이 저런 것일까. 그렇다면 아이들을 향한 마음도 이렇게 유연하게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여정을) 시작하고, (아이들과 다시 즐겁게 놀 수 있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날입니다.
저는 놀이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고 내 삶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요. 놀이의 세계에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윤일.
포터가 안겨준 질문들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입니다. 소영에게 편지를 쓰면서는 즐겁고 몰입하게 되는 대화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놀이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놀이 이론 수업에서는 눈으로 보이는 움직임 없이 공상 하는 것도 놀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논의가 있었다고 하는 기억도 나요. 한 편으로는 맞으면 어쩌고, 아니면 어쩔거야!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놀이의 특성에 대해 연구한 자료들을 보면 우리가 일상을 놀이로 만드는데 좋은 나침반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봤던 연구에서는 놀이는 이런 특성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능동적으로 본인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자발성이 있다.
긍정적 정서가 드러나면서 재미있고 즐거움이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하며, 변화시키는 융통성이 있다.
비사실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상상적 요소가 많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만족을 얻는다.
본인이 주도적으로 언제라도 시작하고,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다시 시작하며, 언제 하더라도 어려움이 없이 과정에 집중한다.
외부에서 부과된 규칙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없다.
진지하게 참여하고 몰두하며 스스로 반복하려고 애쓴다.
언어적 유희, 신체적 도전과 모험, 사회적 협력, 긍정적 정서가 동시 다발적으로 표현된다.
이런 특성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미래들과 하려고 하는 것이 결국 함께 하는 모든 과정을 놀이로 만드는 실험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요리 놀이, 연극 놀이, 영어 놀이, 옷짓기 놀이, 농사 놀이, 악기 연주 놀이 등. 얼마나 많은 다양한 종류의 놀이들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그리고 가시화 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매일 하나 이상의 놀이를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삶은 결국 어떻게 바뀔까요?
오늘 리조가 월담이 ‘기본 소득을 받는 생활을 미리 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컨텐츠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던져주었어요. 늘 모든 사람이 기본 소득을 받는 세상이 된다면 결국 잘 노는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포터에게 편지를 쓰면서는 그 아이디어가 한층 더 구체화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끊임없이 자극적인 컨텐츠가 제공되는 세상에서 ‘심심함’의 소중함에 대해 재고한 적이 있거든요. 아주 어릴 때는 심심했기 때문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재미있는 환경과 규칙, 상상을 만들었었고, 그게 지금 제가 사람들, 일, 작업과 어떻게 하면 더 재밌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근육을 키워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터가 이야기 한 ‘창조의 여지’ 역시 심심함이 지켜졌을 때, 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네요. 그래서 더 소비하기보다는 창조하는 예술가로 남고 싶은 마음이 지워지지가 않나봐요. ‘너 자신을 지우고 내가 보여주는 거나 봐’라고 하는 세상에 저항해서 몸으로 오롯이 감각하고 그 느낌을 기반으로 사고하는 ‘나다움’을 잃고 싶지 않나봐요.
아마도 그 과정에서 바로 우리처럼 '너무나 소중한 너를 지우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해주는 동료들이 필요한 거겠죠.
리조에게
공유되지 않는 경험을 나누는 것은 늘 긴장되는 일이야. 그 사람의 말과 말이 아닌 느낌을 왜곡 없이 전달함과 동시에 나의 느낌도 잘 인지해야하기 때문일까? 어제 자기들과 신나게 원단 및 부자재 쇼핑을 하고 다소 급하게 넘어가 처음 놀이 이론 수업을 가르쳐 주시고 석사 논문 부심이기도 하셨던 김지연 교수님을 뵈러 갔던 이야기를 조금 부담을 덜고 싶어 이렇게 편지로 전해보려고 해.
나도 졸업하고 너무 오랜만에 뵙는 거라, 또 졸업할 즈음에는 교수님이 무슨 센터장을 맡으셔서 너무 정신없어 보이셨던지라, 만나기 직전에는 좀 긴장이 되었던 것 같아. 어떤 표정과 행동으로 맞이하게 될까? 그런데 그래도 높은 건물도 없고 멀리 산도 보이는 따뜻한 분위기의 동네의 에너지에 기대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하고 있었지. 근데 만나는 순간 서로 너무 반가워하는게 느껴져서 꼭 안고 그간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확 돌아가게 되더라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주제를 몇가지 이야기 해보자면
1. 교직원으로서의 생활
벌써 배화여자대학 유아교육과에 임용되신지 4년이 지났는데 열정의 불씨를 피울 친구들이 왕왕 보였던 옛날과는 많이 다르시대. 그냥 자격증을 따러 온 친구들도 많고, 근데 해야하는 건 안해와서 매일 숙제 왜 안하냐고 이야기 하느라 지치고. 수업시간에는 영상 보는 친구들도 많고 무기력하거나 공황이 있는 친구들도 많고. 학교가 있는 서촌이라는 동네를 너무 좋아하는데 학교만 들어가면 마음이 힘들어서 스트레스 많이 받으면 인왕산 쪽을 막 걷거나 뛰고 바로 아래 있는 젤라또 집을 간다면서 태국음식 저녁에 이어서 맛있는 젤라또도 사주셨는데 꽤 맛있어서 자기들이랑도 꼭 다시 오고 싶다고 생각했어.
3. 교육에서의 ‘움직임’
그래서 더더욱 앞으로 사람의 발달에 있어서 몸이 중요하게 될 것 같은데 아직은 주목할 수 있는 인재도 분위기도 타기 직전인 것 같다고 이야기 하시더라고. 그 이유는 우리가 그동안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느껴온 것들인 것 같아. 분명 체육교육 등과는 다른 부분인데 (스포츠라기보다는 내가 삶에서 원하는 만큼 편안하게 움직이고 표현할 수 있는 차원 포함) 그걸 설명할 언어도 경험도 없다고 느껴졌어. 그리고 아무래도 박사를 해야할 것 같다면서 해외를 가도 좋고 지금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게 있으니까 국내에서 일 같이 하면서 박사를 하고 엄청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으로 포닥을 가는 것도 괜찮을 수 있다고 하셨어. 김명순 교수님은 그리고 은퇴하시고도 엄청 바쁘시대ㅋㅋㅋ
4. 놀이와 행동유발성(affordance)로서의 옷
오늘 뭐하다가 왔는지 물어보셔서 동대문 시장 다녀온 이야기 하다가 이번에 경기문화재단과 하는 옷을 만들고 놀이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너무너무 재미있는 프로젝트일 것 같다면서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는지 물어보셔서 또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러다 사람 옷이라는게 정말 놀이에 되게 중요한 부분인데 연구가 많이 안된 부분인 것 같다는 얘기 까지 이어졌지. 그러다 혹시 초등 고학년 정도 아이들 30명 정도에게 FGI로 놀이와 옷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연구 해볼까? 하는 이야기까지 이어졌어. 정말 하고 싶으면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같이 논의하며 연구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서! 뭐 할 거 있거나 할 때 그냥 연구실 놀러와서 앉아서 글 써도 좋고 자기는 회의 갔다오겠다고 하심ㅋㅋㅋ그러면서 나의 질적연구방법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면서 교수님은 박사 때 코스웍으로 배우셨나요? 했더니 아니 자기도 그냥 맨땅에 해딩하면서 했다고 그냥 하고 혼나고 요러면서 또 배웠다고 하시더라고ㅋㅋㅋ간이 좀 있고 욕심을 내고 싶으면 IRB라고 해외 연구윤리에 맞춰 동의서를 받고 보내서 승인을 받으면 연구를 할 수 있는 절차를 밟으면 된대. 그렇게 내고, 학회 다니고 하는 것도 윤일 리조 선생님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
5. 자연과 달리기
아직도 교수님은 분당에서 경복궁까지 엄청난 통근을 하고 계시대. 독립하셔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씀드렸더니 (여기도 독립 프로젝트가 필요한 것) 그러니까! 그게 쉽지 않네 하시면서도 인왕산 밑에 아주 오래된 빌라가 있다면서 산책하며 보여주시기도 했어. 그리고 요즘 잠이 잘 안와서 4-5시간밖에 못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10시 반 정도인데도 아파트 앞을 그냥 마냥 달리신대 흑흑 그리고 자연이 성인과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자유로움과 힘을 크게 느끼고 있어서 내년에는 산에 들어가실 예정이라고 하시네? 그래서 저도 같이 가도 되나요 했어ㅋㅋㅋㅋㅋ더불어 학교 다닐 때는 잘 알지 못했던 우리 가족 얘기도 하고, 동생들 이야기도 하고, 강릉 얘기도 하고, 세계 놀이터 탐방 한 이야기도 하고 그랬다.
6. 출판 의뢰
최근데 제주시에 있는 약간 와일드하게 몸으로 노는 철학을 가진 어린이집의 선생님들과 Loose Part에 대해 원고를 쓰고 있으신데, 마침 출판할 곳을 찾고 계셨대. 100페이지 정도 컬러인데, 엄청 좋은 종이를 쓸 필요는 없고 종사자들끼리, 혹은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나눠볼 수 있을 정도? 100부에서 단가가 비슷하다면 500부 정도까지 생각 중이고, 월담이 관심있는 분야랑도 엄청 다르지는 않으니까 혹시 선생님들끼리 돈을 모아서라도 할 수 있으면 할 생각이 있어서 초기 비용이나 계약 방식 등을 논의해서 알려주면 진짜 같이 만들어보고 싶다고 하셨어.
집에 돌아오는데 행동유발성에 대한 논문도 찾아보고 싶고, 연구계획서도 써보고 싶고, 위험감수놀이 연구를 먼저 했던 영은이한테 연락도 하고 싶고, 동작교육에 대한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우리 다같이 산도 가고 싶고, 출판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고, 같이 옷도 만들고 싶고 그렇더라고. 그런데 너무 많은 동기 유발들이 밀려오니까 잠도 안오고 감당이 안되어서 자기들 부자재 쇼핑도 궁금하고 한데 소통이 너무 어렵더라고. 그래도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창구가 있는게 너무 소중하다.
이렇게 이전의 인연과 다시 맞닿으니 우리가 지금껏 해온 일들의 의미가 더 귀하게 느껴지는 거 있지. 그 과정에서 지지고 볶으면서도 함께 있어줘서 고맙고, 아무리 두려운 일도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을 주는 존재가 되어줘서 고마워.
지금은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잘 넘어가고 있으려나? 매일의 시간들이 하나하나 너무 소중하고 귀하면서도 밖에서 자고, 집도 충분히 못 돌보고 하느라 지쳤을까봐 걱정이 된다.
춘천 가서는 조금이라도 한 숨 돌리고 이따가도 잘 만나보자!
윤일이가
영희에게
런던에서 놀이터를 함께 탐방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영희의 편지를 읽으니 또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많아요. 반대로 영희는 나에게 던져준 질문들에 대해 새롭게 느낀 것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영희의 어릴적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에게는 또래 친구들과 놀이하는 시간이 나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최근에 쓴 책에도 약간은 들어있었던 내용이기도 한데, 저도 삼남매의 구성원이지만 점점 부모님의 신경이 다른 쪽으로 가는 것을 기억하지는 못해요. 다섯살 무렵 막내가 생겼고, 그 전에는 부모님이 발달이 느린 쌍둥이 동생을 케어 하느라 좀 힘들어하셨던 것 같거든요.
본인들의 커리어를 위해서 (엄마는 개원 초기, 아빠는 정교수 초기) 굉장히 몰입하면서 태워내는 30대의 시기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두 개나 생기면서 두 분은 아프기도 하고 참 많이 싸우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저는 너무 괴로우면서도 그 분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더 이해했고요. 어느날은 부모님이 저를 앉혀놓고 이야기 하기도 했어요. 엄마 아빠가 너무 힘드니 네가 좀 봐줘라. 그 때는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쿨하게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살펴보니 좀 상처였나봐요. 지금도 그래서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는 누군가가 주는 돌봄은 잘 받지 못하겠는 것이 강박처럼 남아있는 걸 보면요.
돌봄을 덜 받는 것의 당위성은 아픈 둘째와 몸이 약하고 사건 사고가 많은(실제 교통사고나 독감 등) 막내와 는 달리 운좋게 건강하고 야무지게 태어난 것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동생이 힘들 때 혼자 잘 태어난 너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사는 것이라는 비난을 자주 했었거든요. 그 때부터 내 힘듦은 나만 인지할 수 있고 돌봐야, 혹은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기 전까지 점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집 주변을 탐색하고 같이 놀 친구를 찾고, 모험하고, 학교에서 키우는 토끼를 관찰하며 이름을 지어주고 풀을 먹이로 주기도 했어요.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그 몰입감이 너무 좋았어요. 머리 아프거나 고통스러운 것들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삶이 너무 어두워지지 않도록 일상에서 벗어난 놀이의 시간을 만들고, 나만의 공간을 찾아 헤매는 것이 어린이 윤일의 자기 돌봄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 갑자기 생각이 난 건데, 집 근처의 숲에 나무위의 집을 짓고 마법 부엉이랑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하늘을 날기도 하는 ‘사라’라는 책을 진짜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번에 런던 갔을 때 텀블링 베이와 작은 나무집에서 넷이 복작복작 있었던 경험이 엄청 행복하게 다가왔어요.
런던에서의 시간을 돌아보니 제가 잘 놀고 싶은 욕구는 행복하고 즐겁지만 허무하지 않은 경험으로 삶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네요. 사람과 관계 맺기가 힘들다고 생각해 새로운 사람들이 많으면 설레면서도 경직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놀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관계들을 많이 만들며 서로를 알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이익을 줘야 한다거나 무언가를 해줘야한다는 마음을 벗어나 함께 즐겁게 노는 파트너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런던의 모험놀이터를 보면서 한국에도 저런 공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으면서도 그 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자발적으로 공간을 돌보는 시민들, 위험하게 놀아도 된다는 부모와 교사의 의식 등 얼마나 많은 문화들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에 착잡하고 막막해지기도 했답니다. 영희, 혹은 미래들은 런던에 다녀와서 어떤 상상들을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해요.
놀이터에서 노는 영희의 해맑은 웃음을 떠올리며
윤일
윤일에게.
상해 공항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윤일에게 편지를 써요.
사실 이전부터 답장을 쓰려고 몇 번 시도했는데 답 회신을 해야한다는 의무감으로 쓰는 글은 윤일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어요.
갈등하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그만큼 우리의 추억도 쌓이고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생기고… 지금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자연스레 피어오르는 이야기들을 전하려고 해요.
-이름빼고 다 닮은 우리? ㅋㅋ
윤일이 편지로 전해준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참 흥미롭게 읽었어요. 닮은 점이 많지만 또 매우 다른 맥락과 환경에서 자랐구나! 알게되는 재미도 있었답니다.
저는 세자매 중 막내고 언니와는 3살, 5살 차이가 나요. 물리적 막내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집안에서 챙기고 돌봐야 하는 ‘막내’ 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의 케어가 제일 어린 막내에게 향하면서 언니들은 서로 더 돈독해졌죠. 언니들은 방을 같이 쓰고 서로에게 교환일기도 쓰고 영화도 종종 보러가는 등 친구처럼 참 재미나게 지냈는데 저는 늘 어리다고 안 껴줘서 속상했던 기억이 나요.그리고 자연스럽게 언니들 보다는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윤일은 어땠나요? 부모님의 관심과 케어가 점점 동생에게 향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었는지, 만약 그랬다면 어린 윤일은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들었는지 문득 궁금하네요.
엇 곧 탑승시간이 다가와요..! 비행기에서 마저 이어가 볼게요 :)
(비행기는 무사히 잘 탔고^^ 기내식은 매우 짰고ㅠㅠ 통로자리를 사수해서 다리를 잘 털어주며 가고 있어요. 얼른 보고 싶어요 윤일 그리고 미래들)
편지를 쓰니 좋은 점은 윤일을 계속 떠올리게 된다는 거에요. 💛
윤일을 생각하면 아이같은 환한 미소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특히 몸으로 만날 때 피어나는 표정과 웃음소리는 상대방도 아이로 돌아가게 해주는 신기한 매력이 있지요.
작년 춘천에서 열었던 <우리는 모두 몸으로 일한다 : 창작자편> 워크숍 땐가, 윤일과 파트너가 되어 만났는데 리조의 설명은 전혀 따르지 않고 (ㅋㅋ) 과감히 규칙들을 변주하고 새로운 놀이들을 생성하며 놀았던 순간이 기억에 오래오래 남아요.
‘어? 이렇게 해도 되는건가?’ 싶은데 앞에서 신나게 웃고 있는 윤일을 보면 호기심과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들어 몸이 먼저 움직이던 그런 순간 이었어요. 리조는 그 모습을 보고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굉장히 좋아하며 격려해 줬던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해방감도 느꼈던 것 같아요. 이 해방감이라는 감정은 어디서 오는 것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됐는데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혹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 부터) 늘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고 정해진 규율을 내재화 하며 지내온 삶. 그래서 인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일상에 체화되어 버린 수동성. 저에게 단단하게 뿌리내린 그 감각을 비트는 경험에서 오는 해방감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으로 몸으로 놀았던 짧은 순간에 저는 어디까지 경험하고 온거죠? 놀이의 세계는 알면 알 수록 참 위대한 것 같아요…! 쓰고보니 웃음, 변주(변형), 호기심, 해방감 모두 놀이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리고 윤일에게 또다른 궁금함도 생겼어요.
-지금의 윤일이 있기 까지 어떤 놀이들을 경험했나요?
-윤일은 어떤 놀이를 지향하나요?
-놀고 난 뒤 어떤 감정들을 느꼈나요?
-윤일이 생각하는 놀이의 중요한 요소들은 무엇인가요?
질문을 남기며…
혹시 나의 질문이 조금 부담이 될까하는 생각도 살짝 하며
모든 질문에 답변을 달라는 얘기는 아닌거 누구보다 잘 알죠 ㅋㅋ
윤일의 피어나는 이야기가 있을 때 편히 들려죠용…
편지를 쓰며 보고픈 마음이 더더욱 커집니다.
그리고 함께 놀 시간들이 무척 기대되네요
곧 만나요-! 그리고 신나게 놀아요 우리-!
-윤일의 미소를 좋아하는 영희가 -
영희에게
어제 영희가 바쁜 일상 중에서 캐치업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말에 놀이의 세계는 생각보다 무서울 수도 있다며 맥락없이 대답했던 것이 마음이 쓰여 이렇게 편지를 써요. 실은 저에게도 일을 놀이로 만드는 것이 끝없는 모순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참 어려운 과제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가장 목적 지향적이어야 하는 시간에서의 중심을 ‘나’로 돌려야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영희는 어릴 때 어떤 친구들과 즐겨 노는 아이였고, 그 시간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나요? 저는 3살 때부터 12살까지 저와 나이가 엇비슷한 아파트에서 살아 왔어서 놀이 동료들이 대부분 아파트에 같이 사는 친구들, 혹은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에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었어요. 오늘은 혹 우리의 작업에 참고가 될까하여 그 친구들과 함께 노는 사이가 되기까지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짚어보고 싶어요.
1. 탐색하기 : 이 과정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짧기도(직관을 믿는 경우),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리기도 했었어요. 그래도 아주 오래 걸리는 경우는 없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일단 놀아보고 불편한 상황(흥이 떨어지는)이 계속 반복되면 안 놀고 말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2. 제안하기 : 물론 심심함이 전제가 된 상태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환경의 자원, 그리고 그 친구의 집과 우리집에 있는 장난감과 같은 각자의 자원을 고려해서 놀이를 제안해요. 제안할 때는 지금까지 지켜본 그 친구의 성향을 생각해서 웬만큼 둘 모두가 흥미를 가질만한 제안을 해요. 거절 당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제안을 다시 고심해서 한다 (자신 없어도 ‘아니 너무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나라면 바로 하겠다~’ 살짝 페이크 필수)
3. 합의 하에 규칙을 정하기 : 이전에 이 놀이를 했던 친구가 주도적으로 경험을 공유하면서 규칙을 정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서로 경험한 규칙이 다르다면 합의를 하기도 하고요. 웬만하면 놀이를 처음 제안한 친구의 말을 따르려고 했던 기억도 나고, 역할을 나누는 경우에는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서로 원하는 역할을 하지 못해 시무룩하다 놀이에서 빠지는 경우도 있어요.
4. 일종의 평가하기 : 그 친구들과 그 놀이가 아주 재미있었다면 다음에 또 하자고 약속하거나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과 노느라 멀어졌다가 또 연결되었다가 했던 것 같기도 하고.
5. 예외 : 짝수여야 하는데 너무 어리거나 중간에 가야하는 친구가 있을 경우에는 ‘깍두기’로 참여해요. 다들 규칙을 조금 어기거나 자기 역할을 잘 하지 못해도 함께하는데 그나마 더 재밌는 것을 아니까 조금씩 봐주는 거죠. 그리고 새로 전학을 오거나 이사를 와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는 꼭 정이 많은 한두명의 친구가 ‘이 놀이는 이런 거야’ 이야기해주기도 해요.
이렇게 쭉 나열해보니 왜인지 험난하게만 느껴졌던 월담의 일하기 방식이 놀이와 굉장히 비슷했구나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요, 바로 엄청난 자율성에 기반했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일을 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참고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게 익숙해서인지 힘든 건 ‘뭐 이런 걸 가지고’하며 티를 내지 않았고, 그러다보면 결국 일은 참는 것이 되었어요. 내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더 다른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참기 힘들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놀이처럼 느껴졌다는 지점은, 그 과정이 결코 아름답지도 순탄하지도 않았지만 어떤 지점에서 서로 절대 참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폭발하며 매 년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체크 해볼 수 있었다는 거에요. 엉엉 울면서도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포기할 수 있었고 그래서 놀이를 계속 이어갈 수 있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제가 인내심이 깊고 잘 싸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재미’ 였답니다.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가 싫었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느끼는 설렘과 감탄이 좋았어요. 죽기 전까지 그런 감각이 일상에 자리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책을 읽거나 전시를 보며 영감을 받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거든요.
반면 누군가가 놀이를 하는데 있어서 나의 자율성을 뺏으려 하거나 (원하지 않는 것을 하라고 하거나), 몰입을 지속적으로 깨려고 하면 조금 과할 정도로 흥미를 잃고 심드렁해져 혼자만의 방으로 돌아가거나 반대로 이 깍 깨물고 몸이 아파할 때까지 몰아치며 끝을 내는 업무로 만들곤 해요. 그만큼 우리의 놀이 실험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잘 살피고, 후자의 마음이 되지 않도록 해나가 보려고 합니다.
그 시간에서 어떤 마음이든 들어줄 수 있고, 서로에 웃김을 소중히 여기는 굿 리스너가 되어 주고 싶어요.
윤일
TO. 미래들.
"일이 정말 놀이가 될 수 있을까?" 이건 어쩌면 '일은 놀이가 될 수 없어'라는 전제 속에 나오는 나의 의구심이 반영된 질문일 수도 있겠어요. 오늘 아침 출근길,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장으로 오는 길에, 따라온 이 질문은, 어쩌면 정말, 일을 놀이처럼 재밌게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떠오른 질문이기도 할거에요.
오늘도 이런 저런, 저에게 맡겨진 일, 하기로 했던 일들이 놓여져있고, 그 일을 제가 어떻게 수행할지, 선택하고 있어요.
오늘 오후 일 중 하나는 학생들이 팀을 이루어, 지역 취재를 하는 활동을 제가 안내해야하는 일이에요.
그 일을 준비하기 전에, 어떤 학생들인지, 좀 더 알기 위해, 다시 한번 활동 신청서를 보고자 해요. 학생들을 내가 일해야하는 대상으로 보기보다, 사람으로 느끼기 위해.. 일을 일로만 처리하려 하지않고, 조금이나마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활동이 되기를 바라며..
From. 포터가. 문득..
리조에게
세계 놀이터 연구의 시작은 우리가 2018년 처음 바르셀로나에 가서 장을 잔뜩 본 후 길을 나서다 만난 조그만 동네 놀이터에서 그네를 탔던 때였을까. 그 전까지 나는 사실 해외의 놀이터가 한국과 다를 수도, 같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못해 봤었나봐.
우리가 만난 바르셀로나의 놀이터들은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게 길을 걷다가 자주 보였고, 플라스틱보다는 주로 나무로 되어 있었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관광 산업의 중심지인 상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바로 앞에도 평범한 놀이터가 2개나 있다는 것이 정말 인상적이었어. 그 사실에 놀랐던 걸 보면 어쩌면 나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아주 신자유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었고, 큰 가치가 있는 땅에 놀이터가 들어서지 못하는 상황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나 싶더라고.
삶에서 많은 중요한 것들은 너무 쉽게 우선순위에 밀리곤 하지. 몸도 그렇고, 인권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아마 아동권, 놀이권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야.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아마 ‘미래’에 큰 희망이 없게 된 때부터 그러지 않았을까 싶어. 내 역사를 짚어보면 아마도 언제 사고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체감한 세월호 사건 때부터. 삶을 너무 소중하게 여기면 절망적이겠다는 방어기제가 발동 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언제 죽어도 별로 아쉽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많은 몸들과 함께 읽어왔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문구처럼 자기애는 때로 생존을 어렵게 한다고 하잖아. 나,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회일수록 채영이 그랬던 것과는 달리 자신의 삶, 그리고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변화의 동력을 내기 힘든 걸지도 몰라. 그래서 ‘중요한 것’들보다는 ‘(떄로는 삶에 해가 되기도 하는)관성이 강한 것들’에게 삶을 내어주게 되는거지. 혹은 반대로 관성의 담을 넘어 변화를 만드는 한 발의 시도에서 부터 자기애는 시작되는 걸지도 모든다는 생각도 들어.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니 우리가 만든 ‘변화의 월담’이라는 이름이 또 다르게 다가온다.
약간 과장을 하자면 그 나라, 혹은 도시, 커뮤니티가 놀이와 놀이터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가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드러내는 걸 수도 있겠다. 각 나라별로 놀이, 놀이터에 얼만큼의 비율, 혹은 크기의 예산을 측정하는지 비교해보는 연구도 아주 재밌겠다. 혹은 아동 1명 당 예산을 들이는 비율도 유의미 할 것 같고 말이야. 아마 우리가 세계의 놀이터를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직관을 가시화 할 수 있는 소중한 데이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윤일
소영에게
편지를 읽고, 참으로 다정하고 따뜻한 소영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삶에서 누구나 내가 무너지면서도 응원하고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다정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그렇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온전히 서기 위해 꼭 필요한 일부까지 내어주지 못했다고 해서 미안해해서는 안되는 거더라고요. 어떤 아이에게 나를 다 바쳐서 최선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이미 최대한을 준 것이었고, 더 줄 수 있는게 없었던 것일수도 있어요.
월담에서도 비슷한 마음이 든 적이 많아요. 내가 아프고 무너지는데도 조금만 더 고생하면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리조 수민이 덜 힘들지 않을까 매 년 처절하고 소름돋게 느끼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아니더라고요. 나를 부수면서까지 내어 주는 사랑은 그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도 잘 가닿지 않아요. 그리고 일종의 ‘오만’일 수도 있어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상호적인 관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갈 수도 있는 거죠. 상대도 비슷한 마음으로, 어쩌면 더 큰 마음의 사랑을 주고 싶었는데도 말이에요.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니까 ‘존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아동, 때로는 여성, 소수 인종, 성소수자,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소영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어떤 층위에서는 기득권이기도, 당사자이기도 한 저는 양가적인 감정을 동시에 느껴요. 죄책감, 부채감, 오만함, 조심스러움 그리고 두려움, 답답함, 수치심, 경계심, 분노 등이 그 감정들이고요. 저는 어린이와 청소년 시기에 후자의 감정을 가장 많이 느꼈던 감각이 남아있네요.
그 때 바랐던 것은 별 것이 없었어요. 나를 표현하고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아마도 다른 어른들이) 잘 들어주기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그렇듯 나도 그들이 힘들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그 때는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이 되는 것. 아마 지금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이 바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요?
이 두 가지가 결코 쉽지는 않아요. 내 목소리를 잘 내기 위해서는 내 생각과 감정을 잘 알아차리는 기민한 감각이 있어야 하고, 언어라는 넘기 힘든 오해의 강을 넘어 최대한 적절한 표현으로 이야기해보고, 실패하는 충분한 경험이 필요할 거에요. 그리고 후자의 경우 역시 내가 주고 싶은 것을 넘어 상대가 어떤 생각과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인지하기 어렵다면 언제든 공유할 수 있는 신뢰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고, 어쩌면 상대 스스로도 모를 적절한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수많은 실패로 연습해야 하니까요.
미래들과의 관계에서도 이 연습을 지난하게 하고 있음을 느끼고, 만약 학교를 만든다면 서로 미숙한 부분이 다를 아이들이 마음껏 이 두가지를 실험해볼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가장 치열하게 몰입하고 즐거움으로 해결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 있는 현장이 놀이터와 교실이었으면 합니다. 그 과정에서 거짓말하지 못하는 ‘몸’은 아주 솔직하고 든든한 동료가 되어 줄거에요.
윤일
윤일에게 포터가
윤일 안녕, 윤일의 몸이 안정을 찾아, 잠을 푹 잤길 바라며, 인사해요.
심심함에 대해서, 막연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저에게 있었는데, 윤일의 편지 속에서 ‘심심함의 소중함’이라는 단어가 저의 생각을 넓혀주었어요.
제가 아침에 일어나 집에 있는 식물을 한동안 바라보는 것, 퇴근 후 집에 와서 아무것도 안하고 잠시 앉아있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제게 주는 심심함의 시간이었겠구나 싶기도 했어요.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해’라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그냥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만끽하는 것. 때로는 핸드폰을 의도적으로 멀리두고, 무언가 계속 보려는 날 적극적으로 심심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런게 ‘심심함의 소중함’이었구나 싶어요.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백무산, 정지의 힘-
심심함을 느끼는 건,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인 것 같기도 해요. 어쩌면 이 심심함이 놀이의 중요한 원동력이겠다 싶어요. 심심한 건, 단순히 쉬는 것과 달리, ‘무언가 놀거리 없나?’하며 씨앗처럼 꿈틀거리는 상태 이니까요. 놀거리, 놀 사람을 찾는 시선이 나에게 있을 수 있다면, ‘외로워, 우울해’와는 다른 미래로 나아갈 수 있으니깐요.
심심한 상태를 참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네요. 그런 면에서 ‘기본 소득’이라는 제도도 결국 나와 우리들에게 심심한 시간을 늘려 주어야 할텐데.. 라는 생각도 들어요.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하는 의무감 속에서 일하다가 지친 나를, 즉 다시 일할 힘을 회복하기 위해 쉬는 시간을 갖는 패턴이 아니라, 정말 심심한 상태.
어떤 책임감, 의무감, 지침,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니라, 심심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기본 소득’이 의미있는 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임금 노동에서 벗어나도, 더 많은 자기 계발의 압박감과, 더 많은 콘텐츠 소비 속에서 수동적인 재미만 느끼게 된다면, 기본 소득이라는 제도도 결국 나와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분명 기본 소득은 매력적인 제도로 보여요.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에 있어서 ‘시민 참여’를 일상 속에서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때, 노동에 있어 ‘임금 노동’의 관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참 어렵겠구나 생각했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결국 현재의 시민 활동이 ‘여가 생활’이 되어야겠다 생각했고, 그래서 더욱이 시민 참여 방식을 예술과 접목하고 싶어했던 저의 여정이 다시 떠올랐어요.
하지만, 기본 소득은 정치적인 맥락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정책이다보니, 사실 저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어요. 정치의 영역은 워낙 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생각하거든요. ㅎㅎ 대신 저는 AI의 확산을 보고, 어쩌면 사람들에게 심심한 시간이 더 늘어날 수 있겠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조만간, 윤일 말 처럼 ‘잘 노는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면에서 제가 주목하고 있는 단어는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이랍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수련회를 가면 으레 하곤 했던 레크리에이션이 앞으로 점차 새로운 주목을 받지 않을까 예상해요. 단어도 다시 보니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다시(RE) 창조성(CREATION)을 충전하는 의미를 담고있는 것 같아 보여서요.
만화가 예전에는 음지의, 비주류의 문화처럼 여겨지던 시절에서 지금은 많은 콘텐츠들의 원작이 되어줄 정도로 문화의 중심에 서있는 것처럼, 레크리에이션도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고, 가볍게 게임하는 정도로 여겨진다면, 점차 그 깊이와 중요성이 높아질 것 같아요.
윤일이 이야기해준 놀이의 특성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 사실 제가 표현예술을 배우는 과정이 바로 그 놀이였고, 그런 놀이는 제 삶에 어마어마한 자원이 되어주었거든요. 단순히 웃고 즐기는 게임을 넘어서요.
그런 레크리에이션을 만들고 싶고, 특히 성인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을 하는 곳이 바로, 제가 만들고 싶은 어른들을 위한 놀이터랍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심심한 하루가 되길 바라며..
포터가.
윤일에게
윤일이 마지막에 던져준 질문이 며칠 동안 저를 따라 다녔어요.
“아이가 노는 모습대로 성인이 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놀이의 중요성에 더 공감해줄 수 있는 기회가 될까요?”
내가 어릴 때 어떻게 놀았지, 곰곰이 되짚어 보다가 갑자기 마음이 서늘해지는 거예요. 나 말고 다른 존재가 떠올라서 그랬는데, 바로 저의 조카들이었어요. 이제는 조카들의 삶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그래도 셋이 옹기종기 모여서 하루 종일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걸 보면 솔직히 마음이 불편해요. 저는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어요. 제가 돌봐준 날들이 많으니까요. 그때 저는 같이 어렸기 때문에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잘 몰랐어요. 저도 그런 종류의 돌봄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더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아요. 어른의 손길이 아주 많이 필요한 아이를 하루 종일 케어 하는 일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체력적으로 지치고,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억울한 날이 많았던 저는 아이가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 놀이를 제안하곤 했어요. 뽀로로 볼까? 병원 놀이 할까?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놀아줘야 하는 역할 놀이는 피하고 수동적으로 있을 수 있는 역할 놀이를 선호함) 그래야 제가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고,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어요.
바닥에 블록과 레고를 부어주고, 색연필을 꺼내주고, 저는 무기력하게 옆에 누워 있었어요. 아이가 고모 이거는 자동차야! 집이야! 고모는 무슨 색을 좋아해? 이런 질문도 귀찮았어요. 사실 어른은 그저 아이의 행동을 읽어주고 지켜봐 주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저는, 적극적으로 놀아주지 못해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제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은, 그때의 경험 때문이었어요. 아이에게 핸드폰을 쥐어주고 핑크퐁을 틀어주는 것이 제일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달콤한 유혹에 항상 지고 말았어요. 육아 중 제일 기쁜 순간은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어요. 소중한 존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곤히 잠들어 있는 순간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것이 양가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실 대다수의?(어떤?) 보호자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고,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자연 앞에서 궁금하고 신기해서 탐색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게 엄마 한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게 될 때, 엄마들은 소진되고 (고모도 소진되고) 아이는 집 안에서, 가장 손쉽게 재미를 주는 핸드폰과 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카들이 핸드폰만 하고 놀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면 어떤 형상이 될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했던 거예요. 물론 그것이 경험의 전부가 아니고, 조카들은 나와 다른 존재니까 무엇도 단언할 수 없지만 그 서늘함은 저의 죄책감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라는 존재가 아이들의 몸에 어떤 시간을 새겼을까, 그런 공포심이랄까요.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했고, 아이들과 충분히 교감하면서 놀지 못했다는 마음의 짐이 생각보다 커다랗다는 것을 깨달아요. 그렇다면 역으로, 놀이의 중요성을 이미 몸으로 체감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 의문도 들고요.
윤일이 포터에게 쓴 편지 중에 놀이의 특성을 찬찬히 읽어 보았어요.
“본인이 주도적으로 언제라도 시작하고,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다시 시작하며, 언제 하더라도 어려움이 없이 과정에 집중한다.”
이 부분이 특히나 마음에 많이 남더라고요. 사실 놀이는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고 (나이도, 시간도, 장소도 구애받지 않고) 무엇보다 미래들과 잘 놀고 있다고 느끼는 요즘, 내가 회복할 수 있는 감각이 저런 것일까. 그렇다면 아이들을 향한 마음도 이렇게 유연하게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여정을) 시작하고, (아이들과 다시 즐겁게 놀 수 있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날입니다.
저는 놀이를 잘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감정과 연결되어 있고 내 삶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요. 놀이의 세계에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윤일.
소영
포터에게
포터가 안겨준 질문들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날입니다. 소영에게 편지를 쓰면서는 즐겁고 몰입하게 되는 대화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놀이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놀이 이론 수업에서는 눈으로 보이는 움직임 없이 공상 하는 것도 놀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논의가 있었다고 하는 기억도 나요. 한 편으로는 맞으면 어쩌고, 아니면 어쩔거야!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놀이의 특성에 대해 연구한 자료들을 보면 우리가 일상을 놀이로 만드는데 좋은 나침반이 되지 않을까요? 제가 봤던 연구에서는 놀이는 이런 특성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능동적으로 본인 스스로 하고자 하는 자발성이 있다.
긍정적 정서가 드러나면서 재미있고 즐거움이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변형하며, 변화시키는 융통성이 있다.
비사실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상상적 요소가 많다.
결과보다는 과정에서 만족을 얻는다.
본인이 주도적으로 언제라도 시작하고,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다시 시작하며, 언제 하더라도 어려움이 없이 과정에 집중한다.
외부에서 부과된 규칙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없다.
진지하게 참여하고 몰두하며 스스로 반복하려고 애쓴다.
언어적 유희, 신체적 도전과 모험, 사회적 협력, 긍정적 정서가 동시 다발적으로 표현된다.
이런 특성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미래들과 하려고 하는 것이 결국 함께 하는 모든 과정을 놀이로 만드는 실험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요리 놀이, 연극 놀이, 영어 놀이, 옷짓기 놀이, 농사 놀이, 악기 연주 놀이 등. 얼마나 많은 다양한 종류의 놀이들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그리고 가시화 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매일 하나 이상의 놀이를 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삶은 결국 어떻게 바뀔까요?
오늘 리조가 월담이 ‘기본 소득을 받는 생활을 미리 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컨텐츠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던져주었어요. 늘 모든 사람이 기본 소득을 받는 세상이 된다면 결국 잘 노는 사람이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포터에게 편지를 쓰면서는 그 아이디어가 한층 더 구체화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끊임없이 자극적인 컨텐츠가 제공되는 세상에서 ‘심심함’의 소중함에 대해 재고한 적이 있거든요. 아주 어릴 때는 심심했기 때문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재미있는 환경과 규칙, 상상을 만들었었고, 그게 지금 제가 사람들, 일, 작업과 어떻게 하면 더 재밌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근육을 키워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포터가 이야기 한 ‘창조의 여지’ 역시 심심함이 지켜졌을 때, 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네요. 그래서 더 소비하기보다는 창조하는 예술가로 남고 싶은 마음이 지워지지가 않나봐요. ‘너 자신을 지우고 내가 보여주는 거나 봐’라고 하는 세상에 저항해서 몸으로 오롯이 감각하고 그 느낌을 기반으로 사고하는 ‘나다움’을 잃고 싶지 않나봐요.
아마도 그 과정에서 바로 우리처럼 '너무나 소중한 너를 지우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해주는 동료들이 필요한 거겠죠.
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