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활동가를 위한 <느끼는 몸의 연대>


활동가들과 몸의 느낌과 놀이가 허락된 시간, 내면을 채우는 영감과 에너지를 나눕니다

'활동가들이 건강과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일상'에서 사회 변화의 방향과 원동력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힐링' 상품들의 단기적 소비보다는, 관계-문화적으로 함께 지속하는 실험과 여정들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반짝 '워케이션', '리트리트'의 기회를 내다보며 버티는 것보다, 우리 일상을 흥미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영감, 용기와 시행착오들이 더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느끼는 몸의 연대>는 몸으로 만드는 시민 공론장, 연대와 교류의 장입니다. 기존 네트워킹 행사나 사회혁신 컨퍼런스들처럼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미리 짜놓은 정보를 발신/소비하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탐색하고픈 주제들을 제안하되 예치기 못한 경험과 대화를 촉진하는 구조로 꾸려졌습니다. 또한 해외 사례나 외부 권위자의 말에 기대어, 바라보기만 하는 '아름다운 그림'같은 변화를 논하는 게 아니라, '말없는 존중', '질책없는 아픔', '낯선 안전함', '역동적인 균형', 그리고 '건강한 혼돈' 등 몸으로 직접 탐구해볼 주제를 정해 변화와 영감들을 느끼고 도출하는 장을 꾸리고자 했습니다.


협업처 : 빠띠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일 : 2023. 10. 28

회   차 : 3시간 총 1회차


Background

언젠가부터 곁에 있는 활동가들, 사회 정의를 위해 '사유와 실천의 예술'을 하는 동료, 이웃들을 초대해 함께 몸으로 즐겁게 맞닿는 시공간을 열자는 꿈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희망, 다시 말해 희망을 걸고픈 미래는 자신의 세계를 넘어 다른 생명들과 더 큰 생태계의 건강을 살피는 -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귀한 감수성을 지닌 - 활동가들에게 있습니다. 특히 끝없이 (필요한) 고민과 의심을 하고, 경청하고 소통하며 애쓰는 활동가에게 '지금 이대로 충분한 내 존재를 다독이는 경험'이 더 필요합니다. 나누는 게 몸에 배인 이들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채우는 창의적 양분, 즉 오롯이 몸으로 느끼고 음미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변화의월담이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몸의 느낌들을 깨우는 시간', '몸으로 존재하는 기쁨을 상기시키는 장'을 만드는 일이고요. 그렇게 노들섬 테라스에서 <느끼는 몸의 연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Keyword

네트워킹, 영감, 연대


Curriculum



불리우고 싶은 이름과 내 몸상태 한 단어를 이야기 하는 '체크인' 시간으로 장을 열어보았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장에 초대하고 싶은 이와 눈을 맞추고 원하는 방식으로 마음과 공을 함께 던져 보냅니다. 서로의 이름을 다 듣고 나서는 상대의 이름을 부르며 공을 던져봅니다. 1개였던 공이 2개, 3개가 되면서 어느새 어색하고 굳어있던 몸이 풀어지고 웃음이 피어납니다.


처음 공을 던지며 서로 이름을 부를 때 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일지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몰랐는데, 정적인 방식에서 동적인 방식으로 호흡을 맞추고 중심을 기대어 주고, 무너지듯 터지는 웃음 속에서 그 사람을 다 아는 것만 같은 느낌. 이미 내 삶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말없는 존중


서로를 가볍게 만난 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주변 공간 둘러봅니다. 가까이도 보고, 멀리도 보며. 이 공간이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어떤 질감과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 보고, 듣고, 만집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나를 인지 해봅니다.  충분히 시간을 보내고 나면 파트너를 이뤄 한 명이 눈을 감고 나머지 한 명이 자신이 바라본 이 공간을 공간 안내 해줍니다. 그러다 점점 탐색하는 사람이 원하는 속도로, 아니면 나한테 무게를 줄 수 있는 편안한 속도로  눈 감은 사람이 같이 갈 길을 정해주는 감각을 느껴보기도 합니다.



역동적인 균형


우리는 태어나서 양수에서 나와서 중력을 처음 느끼고 바닥에서 허우적대다가 점점 두 발로 딛고 중력과 관계 맺는 연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서 있는 것부터 걷는 것 자체가 다 중력과 어떤 관계를 맺어서 균형을 잡는 행위인데요. 그래서 발로 다시 서서 내 균형의 감각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공간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한 발을 조심스럽게 뗀 후, 시선을 좌우 위 아래로 돌리며 균형을 직접 몸으로 경험 해봅니다.  비틀 거리기도,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기도 하면서 넘어지지는 않는 그런 역동적인 상태가 균형임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눈을 감고 균형 잡아보며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불안정하게 균형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 때, 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 하는지 관찰 해봅니다.



몸을 평면적으로 썼을 때는 닿을 수 없지만 발 부터 척추 끝인 머리까지 같이 돌리면 확장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는 어깨 골반 터치 게임을 해보며 보다 더 역동적인 균형을 경험해보기도 합니다. 게임을 하며 내 시선이 외부(상대방의 어깨나 손)에도 가지만 어떻게 내면의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을지 살펴봅니다. 



이번에는 마스킹 테이프를 하나씩 잡고 균형을 잡으면서 막 갈 경로들을 다같이 무작위로 만들어 보고, 그 선 위에서만 움직이며 플레이볼을 2명 씩 짝을 지어 주고 받아봅니다. 단순한 공 주고받기, 단순한 균형 잡기를 넘어 서로를 살피면서도 나의 감각에 집중하게 됩니다.



내 발의 감각부터 날아오는 공, 그리고 공을 잡는 손까지 다 연결되어서 머리 중심에서 이제 발 중심으로 한번 이 공간을 이동을 해보았습니다. 공간을 이동하다가 서로 마주치게 될 때면 어떻게 공간을 공유 하면서 같이 활동 이어갈 수 있을지 탐색 해봅니다.



지금의 내 몸, 내 삶의 맥락을 온전히 알아차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런 흔들림, 균형감을 허용해보면 어떨까? 서로가 존재하지도 않은 골인 지점으로 어서 빨리 뛰어들라며 재촉하기 보단, 각자의 맥락의 독특함을 있는 그대로 허용할 수 있다면. 오늘 월담의 장에서 몸으로 움직이며 서로의 몸을 알아가고, 뒤섞이고, 한데 어울리며 참 즐거웠다.



보통 5-6kg 정도 되는 머리를 이고다니는 척추의 뼈 모양을 보며 앞으로 나아갔을 때 60kg까지 하중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자각 해봅니다. 82%가 액체로 이루어진 나의 몸이  힘을 발휘할 때도 어떤 액체의 흐름으로 탄성으로 아니면 리듬으로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힘을 전달할 수 있는지 받을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을 한번 살펴볼 수 있는 활동을 해봅니다.



낯선 안전함


공은 모든 면이 구로 되어있기 때문에 공과 몸이 만났을 때  평소에 뭔가 느끼지 못한 어떤 몸의 수많은 곡선들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파트너와 공을 잡고 슬라이드 하다가 흘러가듯 움직이는 느낌이 나면 상대의 손에서 공을 빼내어 봅니다. 처음에는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게 되는데, 그런 혼란의 과정에서 나와 파트너를 소진키지 않으면서 놀이를 이어갈 수 있을지를 탐색해봅니다. 이런 과정들은 생활 패턴 안에서 쓰는 방식, 익숙한 방식들에서 계속해서 으깨고 벗어나게 하고 이러면서 몸을 새롭게 짜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짝지어 농구공 굴리기 할 때, 해도 해도 모자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이겨야한다는 본능적인 승부욕에 더해, 때려 눞이는 게 아니라 공의 흐름을 가져온다는 행위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을 굴리고 같이 부대끼는게 재미있었고 친밀함을 느꼈다. 뺏는다는 생각보다 상대가 어떤 제스처를 취할 때 기회로 삼고 빈틈을 노려라는 말이 날 좀더 침착하게 페이스를 찾게 도와주었고 훨씬 자유로웠다.



건강한 혼돈


여러 관절들을 기점으로 몸을 돌리고 이동하고 이런 전신 협응 동작들을 제안하는 활동을 이어갑니다. '몸으로 푸는 퍼즐'로도 불리는 이 활동은 리더의 움직임을 보고 몸과 손발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계속해서 실험해보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머리로 끙끙거리다가어느 순간 머리를 내려 놓으면 문제가 풀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긴장할수록 경직되는 많은 부분들을 인지하고 내려놓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데크를 오가며 손을 흔들고 단체로 다닐 대, 처음에는 '아 똑같이 잘해야 하는데?'가 자동으로 떠오르다가(내 몸을 컨트롤 해야해), 4바퀴때쯤 전략을 바꿔서 손이 흔들리는 대로 다리가 따라가게 두었더니(나에게 정말 혁명적인 과정. 허용의 과정. 흔치 않은 경험) 자연스럽게 편한 방향으로 몸이 협동해서 움직였다. 오히려 머리가 방해한 것이다. 마지막 쯤엔 춤추는 듯 했다. 즐거웠다. 이렇게 같이 움직이고 웃고 할 수 있는 장은 월담이 만들어왔다. 이런 만남과 공동체를 계속 만나고 싶다. 몸을 허가한다!



나를 파괴하고 소진시키는 혼돈이 아닌, 나의 관성이나 구조를 으깨주는 식의 혼돈으로 새로운 규칙을 적용한 피구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기존 피구와 동일하게 상대편을 아웃시키지만, 아웃된 후에서 경기장에 남아 띠를 두르고 우리편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게임을 이어갈 수 있고, 상대편 경기장에 있는 골대에 골을 넣으면 한 명의 수호신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게임을 하다 재미를 해친다고 여겨지는 규칙이 있으면 합의 하에 변경하기도 합니다.



질책없는 아픔


활동이 끝나고, 몸일지와 공동낭독으로 하기 전에 짧게 몸을 돌보는 제로폼을 진행했습니다. 팔을 들어올리고, 비틀어 짜고, 털어내면서 아픈 부분의 감각에 집중하고 돌보아주는 움직임이었는데요, 아픔이 느껴졌을 때 '내 몸은 왜 이럴까', '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는다'며 질책하기 보다  나를 아끼는 몸이 지금 무언가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고 있다는 지점에서 그 감각에 고마워하고 돌보아갈 수 있는 계기로 여길 수 있기를 바라는 시간이었습니다.


조용하고도 강력한 긴장이 몸을 감싸 안는 상태에서 이 장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깝고도 낯선 이들과 파트너를 이루며 평소에는 혼자서 찾아갈 수 없었던, 그러나 몸의 탄생부터 간직해왔던 느낌들, 쫄깃하게 통통 튀어오르는 탄력이나 전혀 타인의 시선이 들어올 자리가 없는 즐거움, 몸의 모든 방어기제를 내려놓은 기분좋은 노곤함, 안정감을 오랜만에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삶을 따스하게 감싸안고 품어주는 느낌들을 몸으로 나눌 수 있는 동료, 이웃들이 있다는게 놀랍다. 일상에서 몇번이고 종종 되짚고 찾아가고 싶은 기억을 만들고 간다. 



최근 어깨가 말려서 의식적으로 펴려고 해도 잘 안 펴졌는데. 바운스 하면서 걷고, 뒹굴다가 딱 서니까 몸이 자연스럽게 펴졌다. 처음 공을 던지며 서로 이름을 부를 때 까지만 해도 어떤 사람일지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몰랐는데, 정적인 방식에서 동적인 방식으로 호흡을 맞추고 중심을 기대어 주고, 무너지듯 터지는 웃음 속에서 그 사람을 다 아는 것만 같은 느낌. 이미 내 삶에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눈을 감고 걸을 때, 길을 안내할 때는 음악이 어떤지 몰랐는데 눈을 감고 해를 보면서 음악이 가득찰 땐 음악이 참 아름답다 느낌. 물, 해, 바람, 반가운 얼굴들, 더 좋아하고 싶어지는 사람들, 땅, 개운한 움직임. 힘이 될 것 같다.



온 몸이 협응하는 동작을 할 때, 파악하기 바쁘고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보는 사이사이에서 점프할 공간을 찾고, 팔을 스윙하며 조금 더 힘을 빼보는 틈새들이 정말 행복했다. 몸을 펼치고, 돌리고, 휘두르는 것이 얼마만인지. 평소에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몸이 이렇게 점프하는 순간을 즐거워했다. 새삼 느꼈다. 엄청나게 흔들리는 균형을 느끼며. 피구 4.0에서 살아있는 순간의 다이나믹함과 고됨(물론 즐거움과 신남도 있지만)을 느끼며. 이렇게 요동치는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겠구나 했다. 눈빛으로, 촉감으로, 온기로 소통하는 경험이 몸의 구석구석을 깨워준다. 



몰아치며 뒷전에 뒀던 몸이 그만하라 아우성치던 어제 오늘이었다. 알면서도 외면했다. 걱정이 몸을 경직되게 하는게 느껴졌다. 압박 상황일 수록 느낌을 단절하며 겉으로는 침착해 보이지만 몸은 아우성 치고 있을 순간들이 떠올랐다.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건 공 레슬링. 지는 것을 아파하고 자책하는 느낌을 오롯이 느끼며 언뜻보면 격렬하고 무자비해 보이지만 그 안에 진하게 녹아있는 말없는 존중이 놀라웠다. 건강한 혼돈 속에서는 충분히 나와 타인에 대한 존중이 함께 할 수 있구나, 느꼈다. 요즘의 삶은 역동적인 균형을 넘어 무너지고 다시 곁의 동료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요즘 몸은 나를 싣고 다닌다. 일터에서 집으로, 약속장소로. 

나는 차가 고장 나지 않도록 정비 하듯 몸을 관리했다. 고장 나지 않을 정도로. 

아침에도 할 일이 있어 몸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나는 차와 몸에 실린 셈이다) 

기계적으로 익숙한 동작(좌회전, 우회전, 직진…)을 반복하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찔찔 흘렀다. 

나는 그걸 손에게 닦으라고 명령하고 다음 약속장소로 향했다.

나는 구부러지고 얌전하고 멈추고 견디는 몸을 타고 지루하다고 울고 있었다. 

나는 펴고 달리고 구르고 소리지르고 당기고 매달리고 웃고 싶었다. 

그건 다 몸이 하는 일이었다. 오늘 그런 일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