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이 푸르러 운동하기에도, 사진 찍기에도 딱 좋았던 여름날. 홍대 앞 경의선책거리 공원에서 딴짓 매거진을 발행하시는 박초롱님과 사진기자 권우성님을 만났습니다. 함께 움직이고 사진도 찍으며 움직임을 실험하고 탐구하며 관계를 배우는 곳, 변화의월담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을 공유합니다.
"움직임 교육 연구소 '변화의 월담'은 움직이는 능력을 회복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젠더나 나이, 사회적 지위, 국적 등과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해볼 수 있는 움직임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탐구하면서 자기 자신과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곳이다."
변화의 월담이 풀어내는 파쿠르?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파쿠르와 변화의 월담에서 교육하는 파쿠르는 좀 다르다. 우리는 도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포괄하는 교육을 한다. 화려한 지붕 사이 뛰어넘기나 높은 벽 기어오르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가장 지루한 인도와 계단에서 할 수 있는 온갖 네발, 두발, 전신 협응 움직임, 벽을 힘차게 뛰어 넘는 것뿐만 아니라 벽에서 흘러내리듯 거꾸로 착지하기, 눈을 감고 시각 외 다른 감각으로 길 찾아가기 등 다양한 움직임을 탐구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한다.
도심에서 어떤 건축물을 넘을 수 있느냐가 중심이 아니라, 어떻게 다양한 몸들이 도심에서 함께 놀이하는 방법과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주 관심사다. 획일화된 '극복' 혹은 '도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개개인 몸이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위험 감수'와 '놀이'를 가능케 하는 교육 환경과 문화가 중요하다.
움직임 교육이 운동과 다른 점?
언제부터 움직이며 일상을 영위하는 몸과 괴리되어 '운동하는 몸'을 만드는 소비 양상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소비할 수 있는 사람만 운동을 하게 되고, 더 심각한 건 소비하지 않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변화의 월담에서는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습관, 방법을 탐구하고 일상 공간에서 몸으로 노는 관계와 문화를 회복하는 교육을 한다.
자기가 채우고 싶은 욕구를 달성하고 싶어서 온 동호회나 클럽, 멤버십 문화는 간적인 관계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소비적인 관계로 단절된다. 자기 계발의 덫에 갇혀서 그 욕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상호작용을 한다. 자기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연결'을 추구하는 것을 진정 '관계'라고 볼 수 있을까.
변화의 월담에서는 내 몸이 이상적인 몸이 돼야 한다거나, 좋은 상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몸무게를 줄이거나 어떤 운동 레벨을 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자기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인지하고, 몸을 실제로 움직이면서 '내 몸이 이렇게 섬세한 구조와 원리로 살아 있구나'를 감각으로 깨닫는 거다. 일상생활에서 내 몸과 다른 사물, 사람이 접촉할 때의 느낌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배워가는 과정이다."
다양한 몸들과 함께 만드는 움직임교육연구소
변화의 월담은 부제가 '다양한 몸들과 함께 만드는 움직임 교육 연구소'인데, 그 '다양한 몸'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여성이라고 다 같은 몸인 것도 아니다. 여성 안에 있는 어떤 다양한 몸들을 어떻게 임파워링할 수 있을까를 아주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고민하고 실험해야 한다.
더 이상 몸은 이성의 통제 하에 도구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 존재의 시작이자 끝, 근본이라는 것을 깨닫는 움직임이 일어나면 좋겠다. 대의를 달성하거나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에 앞서 그 과정에 함께하는 몸들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가 우선 아닐까. 몸의 지속성과 회복력에 대한 확신은 움직이며 변화하는 몸의 경험에서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58164
하늘이 푸르러 운동하기에도, 사진 찍기에도 딱 좋았던 여름날. 홍대 앞 경의선책거리 공원에서 딴짓 매거진을 발행하시는 박초롱님과 사진기자 권우성님을 만났습니다. 함께 움직이고 사진도 찍으며 움직임을 실험하고 탐구하며 관계를 배우는 곳, 변화의월담에 대해 나눈 이야기들을 공유합니다.
"움직임 교육 연구소 '변화의 월담'은 움직이는 능력을 회복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젠더나 나이, 사회적 지위, 국적 등과 관계없이 사람이라면 해볼 수 있는 움직임을 다양하게 실험하고 탐구하면서 자기 자신과 관계에 대해서 배우는 곳이다."
변화의 월담이 풀어내는 파쿠르?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파쿠르와 변화의 월담에서 교육하는 파쿠르는 좀 다르다. 우리는 도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움직임을 포괄하는 교육을 한다. 화려한 지붕 사이 뛰어넘기나 높은 벽 기어오르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가장 지루한 인도와 계단에서 할 수 있는 온갖 네발, 두발, 전신 협응 움직임, 벽을 힘차게 뛰어 넘는 것뿐만 아니라 벽에서 흘러내리듯 거꾸로 착지하기, 눈을 감고 시각 외 다른 감각으로 길 찾아가기 등 다양한 움직임을 탐구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한다.
도심에서 어떤 건축물을 넘을 수 있느냐가 중심이 아니라, 어떻게 다양한 몸들이 도심에서 함께 놀이하는 방법과 상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주 관심사다. 획일화된 '극복' 혹은 '도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개개인 몸이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위험 감수'와 '놀이'를 가능케 하는 교육 환경과 문화가 중요하다.
움직임 교육이 운동과 다른 점?
언제부터 움직이며 일상을 영위하는 몸과 괴리되어 '운동하는 몸'을 만드는 소비 양상만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소비할 수 있는 사람만 운동을 하게 되고, 더 심각한 건 소비하지 않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변화의 월담에서는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습관, 방법을 탐구하고 일상 공간에서 몸으로 노는 관계와 문화를 회복하는 교육을 한다.
자기가 채우고 싶은 욕구를 달성하고 싶어서 온 동호회나 클럽, 멤버십 문화는 간적인 관계를 만드는 게 쉽지 않다. 소비적인 관계로 단절된다. 자기 계발의 덫에 갇혀서 그 욕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상호작용을 한다. 자기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연결'을 추구하는 것을 진정 '관계'라고 볼 수 있을까.
변화의 월담에서는 내 몸이 이상적인 몸이 돼야 한다거나, 좋은 상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몸무게를 줄이거나 어떤 운동 레벨을 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자기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인지하고, 몸을 실제로 움직이면서 '내 몸이 이렇게 섬세한 구조와 원리로 살아 있구나'를 감각으로 깨닫는 거다. 일상생활에서 내 몸과 다른 사물, 사람이 접촉할 때의 느낌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배워가는 과정이다."
다양한 몸들과 함께 만드는 움직임교육연구소
변화의 월담은 부제가 '다양한 몸들과 함께 만드는 움직임 교육 연구소'인데, 그 '다양한 몸'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여성이라고 다 같은 몸인 것도 아니다. 여성 안에 있는 어떤 다양한 몸들을 어떻게 임파워링할 수 있을까를 아주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고민하고 실험해야 한다.
더 이상 몸은 이성의 통제 하에 도구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사람 존재의 시작이자 끝, 근본이라는 것을 깨닫는 움직임이 일어나면 좋겠다. 대의를 달성하거나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에 앞서 그 과정에 함께하는 몸들이 얼마나 지속 가능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가 우선 아닐까. 몸의 지속성과 회복력에 대한 확신은 움직이며 변화하는 몸의 경험에서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원문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58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