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업의 문제는 젠더에 앞서, 학생들이 중요하지 않은 수업을 꾸린다는 것이었다. 수업의 중심은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몸이 아닌, 선생님의 몸, 혹은 선생님이 선망하는 몸이다. 한국 선생님들은 대개 ‘강한’ 몸, ‘능숙한’ 몸을 선망한다. ‘즐겁게 움직이는’ 몸, ‘나의 고유함을 잘 아는’ 몸, ‘창의적으로 놀이하는’ 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몸, ‘섬세하고 사려 깊은’ 몸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다. 선생님은 최대한 잘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 하고,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우열의 기준이 명확하다.
- 본문 154쪽, 변화의월담, 〈놀이는 젠더를 모른다〉
원문 보러가기
우리 수업의 문제는 젠더에 앞서, 학생들이 중요하지 않은 수업을 꾸린다는 것이었다. 수업의 중심은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몸이 아닌, 선생님의 몸, 혹은 선생님이 선망하는 몸이다. 한국 선생님들은 대개 ‘강한’ 몸, ‘능숙한’ 몸을 선망한다. ‘즐겁게 움직이는’ 몸, ‘나의 고유함을 잘 아는’ 몸, ‘창의적으로 놀이하는’ 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몸, ‘섬세하고 사려 깊은’ 몸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다. 선생님은 최대한 잘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 하고,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우열의 기준이 명확하다.
- 본문 154쪽, 변화의월담, 〈놀이는 젠더를 모른다〉
원문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