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육 68호] 몸을 살리는 교육 연재 - 프롤로그 <1,500명의 몸들이 만들어 낸 변화의 ‘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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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월담이 교육공동체벗 격월간지인 오늘의 교육 68호부터 '몸을 살리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신체 기능과 수행 능력을 중심으로 몸의 가치를 판단하고 서열을 매기는 교육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는 사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있는지, 아니면 비교당하고 평가당하고 있는지를 몸은 이미 알고 반응하고 있었다. 수행 평가라는 명확한 평가 체제가 없어도,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서로 공유되는 구도에서는 끝없이 비교와 평가, 대상화가 일어난다. 그런 곳에서 모두가 즐겁게 움직이기란 불가능하다. 자신의 움직임으로 인해 존재 가치가 낮게 평가될 바에는 움직임 자체를 거부하는 게 낫다. 움직이기를 싫어하게 되는 건 결국 원치 않는 타인의 시선과 판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었다.

- 본문 238쪽


움직임 교육을 할수록 몸의 움직임 자체가 중요 하기보다, 움직임이 하나의 자극이 되어 나오는 몸의 이야기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새로운 몸의 경험은 또 하나의 추억에 머무르지만, 그 경험에서 몸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이 싹트고, 새롭게 이야기하는 서사가 생기면 그건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몸을 살리는 교육은 신체 기능을 증진시키기보다 몸과 맺는 관계, 몸을 향하는 언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어디까지, 어떻게 움직이냐보다 지금 이대로의 몸이 지닌 가능성과 힘을 믿는 마음을 싹틔우는 데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 본문 244쪽


바디 커뮤니케이션 교육은 몸을 훈련과 관리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낡은 세계관을 탈피하고,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주체로서 몸을 재발견하고자 붙인 이름이다. 교육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만난 건 몸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해 왔던 성인들, 정확히 말하면, 몸을 도구화하여 성과를 최대한 내라 요구하는 사회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성인들이다. 이들과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 일단 경직된 몸을 정성스레 만져 주는 시간을 가진다. 손과 발, 팔, 척추를 이리저리 주무르고 두들겨주는 접촉을 주고 받다 보면, 금세 따뜻한 에너지가 돌고 몸에 대한 호기심이 피어난다. 그렇게 서서히 다른 몸 혹은 공, 막대기 등의 사물과 상호작용하며 지치지 않고 즐겁게 움직이는 방법을 찾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 본문 246쪽


중요한 건 어떤 동작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몸을 느끼는 것이다. 내 몸이 얼마나 느껴지는가, 그 느낌이 얼마나 섬세하고 선명해지는가, 이 장을 떠나서도 돌아보고, 다시 찾고 싶은 몸의 느낌은 무엇인가이다.  평가를 내려놓고 오롯이 몸을 느끼는 것, 간단한 주문이면서도 많은 이들이 어려워했다. 수시로 몸의 느낌을 간과하고 망각하며 '열심히' 움직였다. 그런 자신과 서로를 발견하고 까르르 웃으며 다시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끝으로 활동을 통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글로 적고 서로의 글을  읽어 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교육에서 나눈 몸의 이야기들을 통해 한국 사회가 몸을 어떻게 대하는지, 우리 몸에 새겨져 있는 사회적 규범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 본문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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